행복의 역치
ep-24. 1년이 지난 후에도 농촌 유학을?
자녀들이 도시에 있었을 때 놀이터의 흔한 풍경이 있다. 누군가가 그네를 타다 내리면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달려갔다. 아이들은 많고 놀이터의 놀이 기구 수는 제한이 있으니 그 빈자리를 얼른 차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타인과의 경쟁이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반면에 아이들이 귀한 이곳은 자녀들이 여유롭다. 그리고 일상이 자연 속에 있기에 그 여유는 배가 된다.
우리가 작년 하반기에 이곳에 왔으니 벌써 두 번째 학기 중이다. 얼마 전에 학교생활에 대해 넌지시 물어보니 두 자녀 모두 이곳에서 조금 더 있고 싶어 하는 눈치다. 첫째의 중학교 배정 문제와 맞물려 있어 처음에는 1년을 계획하고 왔지만 우리에게 앞으로 더 없을 기회이기에 올해 말까지 반년 더 이어갈지 고민 중이다.
어찌 되었건 학교와 펜션에 잘 적응해서 다니고 있다는 말이니 감사할 따름이다.
이번 주는 학교에서 단체 여행이 계획되어 있다. 2박 3일 일정으로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다. 자녀들은 지난주부터 설레어 준비물을 챙기고, 아빠와 용돈을 협상 중이다. 연 5% 이자를 주는 아빠 은행에서 돈을 조금 찾겠다고 한다.
체험학습 덕에 나는 이곳 펜션을 떠나 속초에서 혼자 이틀을 지내려 한다. 첫날은 백담사를 시작으로 설악산을 산책하고, 산책이 끝나면 산 아래 식당에 들러 파전도 먹어야겠다. 막걸 리가 조금 아쉽지만 술을 끊은 지 6년이 지났기에 단주에는 문제없다.
비가 온다는 목요일은 속초 해변의 이름 모를 낯선 카페에 가볼까?
좋아하는 책도 한두 권 챙겨야겠다.
행복의 역치
어떤 음식을 먹어도 맛있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렇다. 회사생활을 할 때 간혹 먼저 밥을 먹고 오면 직원들이 식당 음식이 어땠는지 물어온다. 내 대답은 항상 같다. 정말이지 매일 맛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내게 음식의 맛을 물어보지 않았다. 사실 맛집에 줄을 서는 이유를 아직도 잘 모르겠다. 평균보다 떨어지는 미각 덕에 티끌 같은 시간들도 절약된다.
개개인이 느끼는 행복의 절대치는 거의 타고난다고 한다. 예를 들어 80만큼의 행복감을 가진 사람이 로또에 당첨되면 당장은 95만큼 행복감을 가지지만, 결국 시간의 흐름에 80에 수렴하게 된다는 말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불행이 아무리 커도 시간의 흐름에 본인의 행복값에 수렴하는 것이다. 다만, 김주환 교수의 책 내면소통이나 회복탄력성을 보면 그 행복의 절댓값을 올릴 수 있는 유일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꾸준한 운동이라 알려준다.
다행히 나는 십여 년 이상 매일 운동을 하고 있다. 근력 운동과 유산소 운동에 잠들기 전 요가까지 운동이 습관이 되었다. 타고남이 근육 체질은 아니지만 평균적인 동년배처럼 배는 나오지 않았고 군살도 없는 편이다. 그 덕에 백화점표 옷을 입지 않아도 몇 천 원짜리 왁스 한 통이면 깔끔하게 외출 준비가 끝난다.
음식이 되었건 옷이 되었건 이런저런 점에서 볼 때 나는 행복의 역치가 조금 낮은 편이다. 웬만해서는 일상이 평온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가 만나는 사람들도 행복의 역치가 낮은 사람들이면 좋겠다. 감사와 평온이 일상인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으면 좋겠다.
행복은 강도가 아닌 빈도라 했던가? 당연한 말이 책의 제목이다. 행복의 강도가 기준치 이상으로 강하다는 것은 쾌락일 테고, 쾌락은 그 강도의 세기만큼 부작용이 따를 수밖에 없다. 술과 담배를 비롯한 마약이 좋은 예이다. 평상시는 갈망의 고통이 기본 값이며, 건강 악화는 덤이다.
참고로 알코올과 니코틴도 와 마찬가지로 마약의 종류이다. 역사적 관습, 사회 문화적 배경과 세수 확보 문제 등이 얽혀있어 합법화된 마약일 뿐. 거기에 청순한 이미지의 스타들을 술병에 덕지덕지 붙인 홍보 효과 덕에 자연스럽게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중독성과 의존도 면에서 술과 담배는 마약 분류표상 엑스터시와 대마초 위의 등급이다.
눈앞에 펼쳐진 현생은 이원성의 세계가 아닌가. 추위가 있으려면 더위가 있어야 하고, 빛이 있으려면 어둠이 있어야 한다. 이처럼 +1은 –1과 동전의 양면처럼 한 몸이다. +1을 느꼈으면 –1이 따라붙어 0으로 자연스럽게 수렴한다.
따라서 부작용이 없는 일상의 잔잔한 평온함이 쾌락보다 한수 위의 상수다. 심지어 지속가능 하기도 하다. 우리가 일생을 거쳐 그토록 추구하는 행복이란 이런 평온한 감정을 수시로 느끼는 것에 다름 아닐것이다.
따듯한 봄날 산골 펜션에서 혼자 마사시는 커피 한잔에 더없이 행복하다.
무엇을 특별히 하지 않아도 평온한 이곳이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