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을 조율하는 용기에 대하여
감정의 품격(品格)~
- 본능을 조율하는 용기에 대하여 -
어떤 감정은 드러나지 않는다. 위계와 책임, 평판과 조건 속에서 감정은 억제된다. 그러나 구조가 느슨해지는 순간 억제되었던 마음은 한 번 움직인다. 그 움직임은 충동이 아니라 본능이다. 자신이 여전히 살아 있는 존재인지 확인하려는 충동. 나는 아직 선택될 수 있는 존재인가. 나는 여전히 매력적인가. 내 몸과 존재는 아직 유효한가. 이 질문은 도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도덕보다 먼저 존재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에 가깝다. 우리는 역할 속에서 살아간다. 남편, 아내, 부모, 직책, 책임자. 역할은 삶을 안정시키지만, 동시에 인간을 기능으로 축소한다. 기능은 유용하지만 생동하지는 않는다. 어느 순간 인간은 묻는다. 나는 아직 기능이 아니라 존재로서 유용한가. 이 질문은 위험하지만, 실은 존재의 온도를 확인하려는 자연스러운 충동이다. 본능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모두가 실행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은 감정을 억누르고, 어떤 사람은 상상 속에만 머문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감정에 충실하게 표현한다. 이 차이는 도덕성의 차이라기보다 용기의 차이다. 자기감정을 인정하고, 그 감정을 마주하고, 확인하고 그 결과를 감당하는 태도. 그것은 방종이 아니라 책임이다. 그러나 본능이 위험해지는 지점은 집착이다. 확인에서 멈추지 못하면, 본능은 과잉으로 흐른다. 표현했고, 확인했고 그리고 정리한다. 가능성은 있었지만 필수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힘. 이때 감정은 상처가 아니라 관조가 된다. 나는 이제 이렇게 생각한다. 그들은 도덕을 파괴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감정이 있었고, 표현했고, 실행했고, 확인했고 그리고 집착하지 않고 돌아섰다. 청춘은 길지 않다. 감정은 언제나 기다려주지 않는다. 자기 마음이 움직였을 때 그 움직임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들은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그들은 감정에 충실했으되 감정에 지배되지는 않았다. 본능은 자연이다. 과잉은 선택이다. 감정을 부정하지는 않되, 감정에 끌려가지 않는 것. 그 사이에 삶의 품격(品格)이 있다. 인간이 인간다울 때 최선의 인간이다.
2026 3月初, 지난봄을 생각하다
獨樂齋에서 幽人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