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그대로였다
기준(基準) 늘리는 법~
- 세상은 그대로였다 -
기준은 세상을 나누기 위해 생긴 것이 아니다. 세상을 이해하려다 만들어진 장치다. 혼란을 줄이기 위해 고안되었고, 판단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사용되었다. 기준이 분명할수록 세계는 정돈된 것처럼 보인다. 구분은 빠르고 판단은 즉각적이다. 그러나 이 선명함은 곧 피로를 동반한다. 세상이 복잡해진 것이 아니라, 하나의 기준으로 모든 장면을 통과시켜려 하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문제가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접근하는 방식에 있다고 보았다. 세계는 늘 그 자리에 있었고, 혼란은 그것을 붙잡으려는 언어와 규칙에서 생겨난다는 것이다. 하나의 규칙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할 때, 사고는 스스로를 옥죄기 시작한다. 사고의 옥죄임이란, 생각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하나의 해석만이 허용될 때 발생한다. 가능성은 줄어들고 판단은 반복되며 세계는 점점 같은 방식으로 보인다. 사고는 외부를 향해 열리지 못하고, 자신을 접어 올리듯 좁아진다. 기준이 하나일 때 세계는 쉽게 갈라져 보인다. 옳고 그름, 안과 밖, 허용과 배제 그러나 이 분할은 세계의 속성이라기보다, 사고의 편의에 가깝다. 기준을 늘린다는 것은 경계를 없애는 일이 아니다. 경계가 생겨나는 조건이 단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견디는 능력에 가깝다. 이때 판단은 사라지지 않는다. 결론은 여전히 가능하지만 맥락이 그 자리를 먼저 차지한다. 속도가 늦춰진 사고는 세계에 더 많은 여지를 허락한다. 몽테뉴는 자기 판단을 끊임없이 시험했다. 확신은 버리지 않았지만 확신이 자신을 대신해 말하게 두지 않았다. 자기 기준과 거리를 유지하는 태도 속에서 타인을 판단하지 않을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 거리감은 냉소가 아니라 여유에 가깝다. 무관심이 아니라 판단을 잠시 보류할 수 있는 힘이다. 기준이 늘어날수록 세계는 덜 요구한다. 분류를 강요하지 않고, 입장을 즉시 정하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그 결과 차별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점차 의미를 잃은 구분이 된다. 이 변화는 도덕적 결단에서 오지 않는다. 시야의 확장에서 비롯된다. 시야가 넓어질수록 나눌 이유도 줄어들고, 세계는 원래 밀도로 돌아온다. 그래서 남는 감정은 각성도 반성도 아니다. 이상할 만큼 웃음에 가깝다. 세계가 바뀐 것이 아니라, 사고가 과도하게 조여져 있었음을 알아차렸을 때 나타나는 표정이다. 세상은 처음부터 자기 방식으로 놓여 있었다. 달라진 것은 그 위를 통과하는 사고(思考)의 폭(幅)이었다.
2026 2月中旬, 설날 연휴에~
獨樂齋에서 幽人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