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과 종결의 구조
의지(意志)의 소모(消耗)~
- 지속과 종결의 구조 -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세계는 나의 표상이며 동시에 맹목적 의지의 표현”이다. 우리가 세계라고 부르는 것은 의식에 나타난 현상이며, 그 현상을 움직이는 근원은 합리적 목적이 아니라 맹목적 의지다. 인간은 스스로 주체라 부르지만, 실상 그는 의지의 개별화된 현상에 가깝다. 그는 선택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택은 이미 조건과 충동의 결과다. 태어남은 자발적이지 않고, 욕망은 스스로 창안한 것이 아니며, 행위 또한 의식 이전의 힘에 의해 추동된다. 하이데거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세계-내-존재로서 이미 던져져 있다. 던져짐은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시작의 조건이다. 존재는 저항으로 출발하지 않는다. 그는 먼저 배치되고 그다음 반응한다. 배고픔은 먹게 하고, 결핍은 일하게 하며, 불안은 지속을 강제한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삶은 욕망과 권태 사이를 왕복하는 진자(振子)와 같다. 욕망이 충족되지 않으면 고통이고, 충족되면 권태가 찾아온다. 그리고 다시 욕망이 발생한다. 결핍과 충족, 긴장과 이완, 다시 결핍 이 순환이 삶의 형식이다. 우리는 이를 ‘버팀‘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 버팀은 영웅적 결단이 아니다. 그것은 의지가 자신을 보존하려는 자동적 운동이다. 니체는 의지를 힘으로 읽었지만, 쇼펜하우어는 그것을 고통의 근원으로 보았다. 의지는 멈추지 않기에 존재는 지속되고, 지속되기에 고통은 반복된다. 이 과정에는 최종 목적이 없다. 의지는 스스로를 반복할 뿐이다. 어떤 궁극적 완성도 약속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의지는 더 이상 한 개체를 유지하지 못한다. 그때 우리는 그것을 사멸(死滅)이라 부른다. 사멸은 비극이 아니다. 의지의 한 형식이 해체되는 사건일 뿐이다. 개체화가 풀리고 현상은 소멸한다. 버팀은 숭고하지 않다. 죽음은 예외가 아니다. 모든 개체는 동일한 결론을 향해 진행한다. 차이로 보이는 것들은 결국 시간구조 앞에서 평평해진다. 우리는 이 구조를 안다. 의지는 반복되고, 개체는 소모되며, 시간은 종결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나 인식은 구조를 멈추지 못한다.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의지의 부정만이 고통을 종결시킬 수 있다 “. 그러나 그것은 극히 예외적인 통찰의 영역에 속한다. 대부분 우리는 그 의지를 중단시키지 못한다. 그저 의지의 운동을 지켜볼 뿐이고, 각자에게 도래할 종결의 순서를 기다릴 뿐이다. 완결이다. 속이 후련하고, 태도는 담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2026 3月初, 正月 大보름에~
獨樂齋에서 幽人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