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정신의 세 번의 변형
짐을 벗고 춤추는 인간~
- 인간 정신의 세 번의 변형 -
인간은 대부분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짐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묻지 않는다. 그저 짊어지고 산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믿는 것을, 옳다고 배운 방식을, 의심 없이 따라온 규칙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짐을 삶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짐을 묵묵히 지고 살아가는 태도를 성실함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어느 순간 질문이 시작된다. 왜 그런가, 왜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가, 왜 어떤 행동은 옳고 어떤 행동은 틀린 것이 되는가. 이 질문들은 생각보다 큰 변화를 가져온다. 그때부터 인간은 자신이 짊어지고 있던 짐을 하나씩 바라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믿어온 규범들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한 가지 단순한 사실에 도달하게 된다. 많은 규칙들이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관습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때 인간은 깨닫는다. 규범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프리드리히 니체는 인간의 정신을 낙타, 사자, 어린아이에게 비유했다. 낙타는 짐을 짊어지는 존재다.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수많은 규범과 가치를 등에 얹고 살아간다.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묻지 않은 채 그저 묵묵히 짊어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인간은 사자가 된다. 사자는 짐을 짊어지지 않는다. 사자는 맞서서 싸우는 존재다.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져 온 규범과 가치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 규칙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 도덕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이 삶의 방식은 정말 나의 것인가. 이 질문은 때로 고독한 싸움이 된다. 오랫동안 믿어 온 것들과 맞서는 일은 자기 자신과 싸우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자의 시간은 길고 고독하다. 그러나 사자가 모든 것을 부수는 것은 아니다. 사자가 부수는 것은 편견과 고정관념, 그리고 타인이 씌어놓은 규범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끝까지 남겨야 할 것들이 있다. 배려와 책임 그리고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다. 이것들은 인간을 묶기 위한 족쇄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덕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자의 싸움은 세상을 부정하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불필요한 짐을 벗어내기 위한 싸움이다. 그 싸움이 끝나면 인간은 마지막 단계에 이른다. 니체는 그것을 어린아이라고 불렀다. 어린아이는 순수함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어린아이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존재다. 낙타가 짐을 짊어지고 사자가 그것을 부수고 나면 어린아이는 이제 가볍게 걸어간다. 억지로 맞추지도 않고 강요된 규칙에 묶이지도 않는다. 자기 리듬으로 살아가며 자기 삶을 스스로 만들어 간다. 그래서 어린아이의 세계에는 무거운 짐도 없고 남을 억지로 끌어들이는 규범도 없다. 그 대신 스스로 선택한 삶과 스스로 감당하는 책임이 있을 뿐이다. 낙타의 시간은 길고, 사자의 시간은 고독하며, 어린아이의 시간은 조용하다. 그러나 그 길을 지나고 나면 인간은 더 이상 남이 만든 세계 속에서 살지 않는다. 비로소 자신이 창조한 세계 속에서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때 인간은 가볍게 춤추듯 걷는 것이다. 인간이 평생 찾는 것은 결국 이 가벼운 발걸음이다. 나는 지금 춤추고 있다. 낙타와 사자를 바라보며. 항상 모든 결과의 시작점은 질문으로 출발한다. 우리는 아직 낙타인가, 아니면 이미 춤추고 있는가.
2026 3月 中旬, 봄비가 내린다.
獨樂齋에서 幽人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