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vs 필연

간절함이 만들어 내는 현실

by diogenes

우연(偶然) vs 필연(必然)

- 간절함이 만들어 내는 현실 -

누구나 한번쯤은 자신이 걷고 있는 길에서 걸음을 멈추고 질문을 던진다. “이 길이 맞나?” 스스로 선택한 길이지만, 확신은 어느새 희미해지고 그 자리에 의심과 회의가 깃든다. 철학자 키르케고르가 말했듯, 우리는 불안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실존과 마주한다. 이 불안은 우리를 방황(彷徨)으로 이끈다. 목적지를 잃은 채 미로를 헤메는 듯한 외로운 시간. 하지만 바로 그 방황의 순간, 기적 같은 만남이 찿아오기도 한다. 학창 시절의 스승 또는 멘토, 내 마음을 관통하는 책 속의 한 문장, 시공을 뛰어넘어 나와 똑같은 고민을 했던 현인들의 기록들, 그 만남의 순간, 우리는 전율과 함께 안도한다. 나 혼자의 고독한 투쟁이 아니었다는 진실에. 이러한 만남은 우연인가, 아니면 정해진 필연인가?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또는 두드려라 그러면 열린다라는 말들은 단순한 희망의 주문이 아니라, 여기에는 철학과 심리학이 설명하는 깊은 원리가 숨어 있다. 에드문트 후설은 세계의 의미가 대상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향하는 우리의 의식 속에서 구성된다고 보았다. 즉 세상은 내게 ‘어떻게 보이는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심리학에서는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간절히 품는 순간, 우리의 뇌는 세상의 무수한 정보 속에서 그 해답을 품은 단서들을 필터링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 세상에 가득했던 목소리들이 나의 간절함으로 비로소 들리기 시작한다. 우리는 이것을 ‘발견‘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간절함이 이끈 ’알아 봄’에 가깝다. 이것은 차라리 ’지연된 깨달음‘이라고 하는 게 좋을 듯하다. 마치 슬로 모션으로 날아와 마음에 적중된 화살처럼. 진정 필요한 만남은 가장 완벽한 순간에 반드시 우리를 다시 찾아 온다. 결국 그 만남이 우연이냐 필연이냐라는 질문은 부차적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만남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내 삶의 동력으로 바꾸는 ‘나‘의 존재이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란 말의 진짜 의미는 초월적 존재가 소원을 들어준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은 나의 간절한 질문이 내 안의 모든 감각을 깨우고, 세상과 공명을 통해 마침내 나에게 필요한 답을 스스로 찾아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 대한 묘사다. 방황은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간절히 원한다는 증거이다. 그 간절함이야말로 무의미해 보이는 우연(偶然)의 파편들을 모아, 내 삶의 위대한 필연(必然)의 서사를 완성시키는 유일한 힘이다.


2026 1月下旬, 忙中閑을 즐기며

獨樂齋에서 幽人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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