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보지 않는 공간

포지션이 사람을 대신할 때

by diogenes

인간을 보지 않는 공간

- 포지션이 사람을 대신할 때 -

그는 오래도록 여러 공간을 드나들었다. 어떤 공간은 넓었고, 어떤 공간은 화려했으며, 어떤 공간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그 공간에서는 사람이 먼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자리와 호칭, 숫자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얼마를 가졌는지, 무엇을 했는지, 누구의 편인지, 대화는 늘 그 순서였다. 사람은 늘 그 뒤에 붙은 설명처럼 취급되었다. 그는 그 분위기를 유난히 불편해했다. 누가 보아도 잘 살아 보이는 공간이었지만, 그 안에는 삶의 온기가 희미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지나치게 많은 것을 쥐고 있었다. 쥐고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말은 거칠어지고, 타인의 얼굴은 점점 흐릿해졌다. 돈은 그들에게 도구가 아니라 사람을 분류하는 기준이 되었다. 그는 그 장면을 여러 번 보았다. 부유함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부유함이 더 이상 자신을 점검하지 않을 때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한나 아렌트가 말한 ‘ 사유하지 않음 ’ 은 악(悪)의 얼굴이 아니라 반복(反復)된 태도(態度)에 가깝다. 그는 그 말을 책 보다 먼저 현실에서 보았다. 반대로, 아무것도 넉넉하지 않은 공간에서는 이상할 만큼 맑은 공기가 흐르는 곳도 있었다.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고, 사람을 줄 세우지도 않았으며, 자기 몫을 넘어서는 욕심을 경계할 줄도 알았다. 가진 것이 적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사람으로 유지하려는 기준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같은 결핍 앞에서도 어떤 이는 비굴해지고, 어떤 이는 더 단단해진다. 그 차이는 환경이 아니라 자신을 무엇으로 규정하느냐에 있었다. 권력과 지식의 공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돈이 많지 않아도 위치가 사람을 대신해 말하는 순간, 그곳 역시 비슷한 공기를 띠었다. 그들은 숫자 앞에서는 겸손했고, 사람들 앞에서는 당당했다. 미셸 푸코가 말한 권력은 소유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작동한다. 그는 그 말을 이해했다. 누가 누구 앞에서 조심하는지를 보면 그 공간의 질서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에게 수없이 물었다. 이 불편함이 미련이나 질투가 아닌지. 그러나 대답은 늘 같았다. 그는 그 공간에 설 수 없었던 사람이 아니라, 서지 않기로 한 사람에 가까웠다. 그래서 더 불편한 것이다. 사람을 보지 않는 공간에서 계속 사람 이야기를 해야 했기 때문에. 그는 자기 인생을 남의 서사로 끝내기 싫었다. 그는 여전히 사람들과 무난하게 지낸다. 예의 있고, 부드럽고, 문제없이. 그러나 진심은 따로 둔다. 진심은 지위가 내려오고, 호칭이 사라지고, 숫자가 빠진 공간에서만 꺼낸다. 화려한 이름이 오가는 이야기보다,이름 없는 인물들이 하루를 버텨내는 장면에서, 그는 비로소 숨이 편해진다. 그는 인간을 원한다. 포지션이 아니라, 역할이 아니라, 증명해야 할 무엇도 아닌 인간을. 그리고 이 불편함은 그가 아직 사람의 편에 서 있다는 가장 조용한 증거인지도 모른다.


2026 2月初, 벌써 먼동이 튼다.

獨樂齋에서 幽人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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