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길리에 온 본격적인 이야기를 건네야지.
바다에서 거북이를 본다는 게 얼마나 경이로운 순간인가.
내가 바닷속에서 본 생명체는 물고기가 다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해파리도 봤고 미역도 봤지만... 그건 뒤로 넘겨두고. 길리에서 물고기를 마주한 3일에 대한 기록을 남기겠다.
1) 첫째 날
동생과 거북이를 보고 싶어 한국에서부터 프라이빗 스노클링 투어를 예약해 놨다. 아침 일찍 일어나 일출을 보고 조식을 든든하게 먹고 항구로 향했다. 항구에서 만난 가이드의 이름은 ‘알리’였다. 함께 보트에 오르고 출발했다. 30분쯤 이동했을까. 보트가 바다 한가운데에 멈췄다. 나와 동생은 구명조끼와 오리발을 착용하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3~4미터쯤 되는 깊이였다. 물은 차갑고 무서웠다.
그렇게 한참 동안 물속을 들여다봤다. 나의 거북이. 어디에 있을까. 거북이가 물속에 있기는 한 걸까. 의문이었다.
-여기로 와!
알리가 소리쳤다. 재빨리 헤엄쳐갔다. 물 밑을 들여다봤다. 거북이였다.
인생 처음 마주한 바다 거북이는 굉장히 귀여웠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고 자유로웠다. 거북이를 더 가까이서 보고 싶었으나 구명조끼 때문에 물 밑으로 내 몸이 잠기지 않았다.
-써니! 아래로 들어와! 구명조끼를 벗어!
망설였다. 수영을 할 줄은 알아도 배운 적은 없고 발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수영해 본 적이 없던 내가 구명조끼를 벗고 바닷속을 누빌 수는 있는 건지.
근데 왠지 모를 자신감과 용기가 생겼다. 지금이 아니면 내가 언제 바닷속을 들여다볼 수 있을까?. 거북이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나날들이 다시는 없을지도 모른다.
-나 잡아줄 거야?
-당연하지.
-알리. 나 너 믿는다.
구명조끼를 벗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물속으로 잠수했다. 순간 모든 소음이 차단됐다. 하늘과 등진 적막 속에서 나는 거북이에게 다가갔다. 물속에서 보는 거북이는 경이로웠다. 딱딱한 그 등껍질과 등껍질 옆으로 나와 있는 다리와 얼굴. 귀여운 얼굴로 바닥에 있는 해초를 마음껏 뜯어먹고 있었다. 파도가 오면 물살에 몸이 기우뚱 들리기도 했다. 그러면 다시 퍼덕퍼덕 헤엄쳐 원래 자리로 돌아오려고 하는 모습. 신기했다. 그 순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꿈꾼다.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바닷물을 잔뜩 먹었다. 바닷속에서 처음 잠수해 본 탓이었다. 어찌할 줄 몰라 허둥대니 알리가 다가와 팔 한쪽을 내어주었다.
-기분 진짜 좋다!
-거북이 어때?
-너무 귀여워. 또 볼래
그러고도 연거푸 바닷물을 마시며 잠수하고 떠올랐다. 귀여운 거북이를 보고 또 봤다. 그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보트에 오르는 순간 뱃멀미를 잔뜩 하기 시작했다.
-알리. 나 토할 것 같아
-써니. 토는 배 밖으로 해.
-내가 토하면 물고기들이 많이 오겠지?
-그렇지. 그게 그들의 먹이야.
3시간에 6만 원이라는 큰돈을 주고 예약했던 스노클링 투어는 1시간 만에 육지로 돌아오며 그 끝을 마무리했다. 아무리 거북이가 귀여워도 뱃멀미를 이길 수는 없었다.
2) 둘째 날.
거북이를 한 시간만 보고 온 것이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지나가며 나에게 인사하는 상인들에게 물었다.
-너 거북이 본 적 있어?
-당연하지!
-어딨 는데?
-바다에 들어가면 바로 있어. 이거 안 보여?
그러고 보니 길 곳곳에 ‘turtle point’라는 문구가 보였다. 길을 지나다니면서 이 표지판을 수도 없이 보긴 봤으나 의심이 가득한 나는 호객 행위인 줄로만 알았다.
-진짜 여기에 거북이 있다고?
-있어. 아침 7~9시에 와봐. 못 보면 나 불러.
그래서 다음 날 6시 30분에 일어났다. 자고 있는 동생이 깨지 않게 조심히 일어나 비치 타월과 스노클링 도구, 물 한 병과 선글라스, 수영복만 냅다 입고 바닷가로 향했다.
터틀 포인트 아무 곳에 짐들을 냅다 던져놓고 스노클링 도구를 챙겨 바닷속에 들어갔다. 그리고 열심히 헤엄치며 물속을 들여다봤다. 사실 혼자 온 거라 약간 두려움이 앞서기도 했다.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누가 날 불렀다.
-There is turtle!
-진짜요?
-오! 한국분이세요?
친절한 한국인. 역시 한국인들은 어디에서나 친절하다. 바로 물 안으로 들어갔다. 거북이였다. 어린 거북이가 겁도 없이 육지 가까이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등껍질이 어제보다 말랑말랑해 보였다. 참 신기했다. 발이 닿는 곳에서도 거북이를 마주할 수 있다니! 길리 사람들은 참 행복에 겨웠다.
이 순간을 눈으로 많이 담고 싶어 거북이의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녔다. 근데 참 웃긴 것이 거북이는 느린 동물이라고 각인이 되어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 있는 '토끼와 거북이'는 정말 유명한 동화이다. 토끼와 거북이가 달리기 경주를 하는 그런...) 실제로 바다 거북이는 엄청 빠르다. 물속에서 사람이 걸으면서 쫓아가면 단숨에 거북이를 놓쳐 버리고 만다.
그래서 놓쳐버렸다. 걷지 말고 나도 같이 헤엄을 쳤어야 했는데. 아직 스노클링이 미숙한 탓이었다.
한 마리만 보고 밖으로 나와버렸다. 이걸 눈으로만 담았다니 너무 아쉬웠다. 왜 휴대폰 방수팩을 안 가지고 왔지? 더 만반의 준비를 해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잽싸게 숙소로 달려가 잠에서 깨어난 동생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나 거북이 봤다.
-어디서?
-요 앞에서. 신기하지?
-사진 있어?
-아니 방수팩 놓고 와서 한 장도 못 찍음.
-거짓말 같은데.
내일은 동생까지 데리고 가야겠다.
3) 셋째 날
6시 30분에 알람 소리가 울렸다. 동생을 흔들었다.
-야 일어나.
-10분만...
-거북이 안 볼 거야?
동생이 벌떡 일어났다. 우리는 바닷가로 향했다.
어제 거북이를 보면서 느낀 점이 몇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 제일 중요한 것은 거북이를 찾는 일이었다. 거북이가 바닷속에서 굉장히 잘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거북이의 외형이 바닷속의 돌멩이나 이끼와 닮아있어 찾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그렇게 거북이를 찾게 된다면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 생각보다 거북이가 바닷속에 깔린 건 아니었다.
-가자
동생과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물이 좀 더 차가웠다. 어제보다 좀 더 일찍 들어가서 그런가. 상관없었다. 우리는 거북이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거북이를 찾는 제일 좋은 방법은 거시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자꾸 발밑만 살피는 동생에게는 거북이가 보일리 없었다. 나는 시야를 최대한 넓게 잡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저 멀리서 검은색 돌멩이가 둥둥 떠다녔다. 거북이었다.
-거북이 찾았어!
떠다니는 돌멩이를 향해 전속력으로 수영했다. 거북이가 맞았다. 이번에는 눈으로 담지 않고 카메라로 담기 위해 엄청 노력했다. 연거푸 잠수하며 거북이 옆으로 다가갔다. 근데 좀 웃긴 것이 거북이에게 다가갈수록 거북이도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어어 이게 아닌데.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누구든지 물러나기 마련이다.
-언니! 왜 자꾸 뒷걸음질 쳐?
-아니 거북이가 자꾸 다가와.
-가만히 있어. 그래야 사진이 잘 찍혀.
-근데 너무 가까워
-언니. 하나도 안 가까워.
보다 못한 동생이 나에게 한 소리했다. 물도 실컷 먹고 욕도 실컷 먹은 나는 심혈을 기울여서 다시 거북이에게 열심히 다가갔다. 거북이가 너무 깊은 곳으로 들어갈 때면 다른 거북이를 찾기도 했다. 우리는 그렇게 거북이와 한동안 놀았다. 애기 거북과 어른 거북이도 보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세 마리의 거북이가 우리에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건 정말 행운이었다.
우리는 물 밖으로 나와 하염없이 거북이 영상을 들여다봤다. 거북이가 잘 나온 부분을 캡처하기도 하고 나와 같이 찍힌 영상을 세밀하게 잘랐다. 그리고 계속 돌려봤다. 그건 마치... 태어난 아기를 신생아실에서 찍어와서 하루 종일 돌려보는 부모의 기분 같았다. 거북이는 내 애도 아닌데.
물속에 있는 거북이는 참 행복해 보였다. 빠르고 느림과 관계없이 그저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묵묵히 유영하는 모습이었다. 깊은 바다에서 본 거북이도, 얕은 물가에서 본 거북이도. 그냥 참 좋아 보였다. 그냥 저렇게 지내면 되는 건데. 묵묵히. 제 갈길 가면서.
사실 지난 학기가 좀 버겁기도 했다. 통제 안 되는 학생들을 보며 스트레스도 받고. 수업과 업무 그리고 외부 활동 속에서 지친 날들도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도 그 끈을 놓지 못해 노트북을 들고 와서 업무를 봐야 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일하면서도 불안했다. 남들보다 뒤처질까 걱정했고 나의 평판이 안 좋을까 전전긍긍했다.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나를 그냥 그렇게 만들었다.
도피하듯 한국에서의 일도 다 끝내지 못한 채로 길리에 왔다. 그리고 무작정 여행을 즐겼다. 겁도 없이 발이 닿지 않는 바닷속에 냅다 몸을 던졌고 아무 바다에 들어가서 거북이가 나올 때까지 물속을 하염없이 뒤지기도 했다. 쉬고 싶으면 쉬었고 수영이 하고 싶으면 수영했다. 모르는 사람들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시간과 관계없이 해가 뜨고 지는 것을 한참 바라보기도 했다. 참 멋대로고 엉망진창이며 얼렁뚱땅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행복했다.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길리 기행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다. 최종 목표인 거북이를 향해 다가갔으나 더 큰 것을 찾고 왔으니 말이다.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도 괜찮을 만큼의 힘을 얻었다고 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