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게 물었다.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선생님도, 이웃 아줌마도 나에게 그렇게 늘 물어보곤 했다. 아마 내가 학교에서 꽤 좋은 성적을 받기도 하였고 혹은 으레 물어보는 말들일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용감한 사람이요.]
하고 대답했다. 그럴 때면 어른들은
[아니 그거 말고. 미래에 뭐가 되고 싶은지 물어보는 거야. 예를 들면 의사나 선생님 같은 거...]
그래도 나는 꿋꿋하게 대답했다.
[저는 용감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러면 안 되나요?]
초등학교 입학 직전, 우리 동네에 롯데리아가 생겼다. 처음 생긴 햄버거 가게를 들어가며 굉장히 두근거리고 설렜다. 아빠는 새우버거 세트를, 나는 불고기 버거를 시켰다. 그리고 같이 마주 보고 앉아 서로의 버거를 먹었다. 감자튀김과 콜라는 나눠 먹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버거가 퍽퍽했다. 콜라가 맛있었을지도 모른다. 다 먹어버린 콜라컵을 바라보며 아빠는 나에게 말했다.
[콜라 좀 리필해 올래?]
나는 무서웠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빠가 해오면 안 돼?]
나의 상황을 모르는 아빠는 무심하게 대처했다.
[아빠 햄버거 먹고 있잖아. 네가 좀 해줘.]
나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게에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모두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고 느꼈다. 내 자리에서 카운터까지는 불과 50m도 되지 않았는데. 나는 몇 걸음 걷다가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못하겠어 아빠.]
아빠는 울먹이는 나를 보며 당황했다. 내가 처음으로 용감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작은 도전도 늘 나에게 어려웠다. 그 뒤로도 나는 도전과 거리가 먼 사람이 되어갔다. 버스에 사람이 많은 날이면 벨을 누르지 못해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기도 하였고, 가끔은 하차벨을 눌렀으나 사람들 사이를 헤쳐나가는 것이 두려워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친 적도 있었다. 용감하지 않은 내가 감수해야 할 것들이었다. 억울하거나 슬프지는 않았다. 그저 나이가 들면 용감해진다며, 언젠가는 기꺼이 도전을 즐기게 되는 날이 온다며, 그건 누구에게나 오는 순간이라고 믿으며 그 순간이 오기만을 기대해 왔다.
그리고 지금. 난 퇴근한다. 6시 30분이었다.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버스를 탔다. 30분 차이일 뿐인데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버스 의자에 앉는 건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고, 미어터진 버스 안에 내가 설 자리가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흔들거리는 버스 손잡이에 내 모든 체중을 맡기며 아슬아슬 집으로 향했다. 괜히 정차하는 버스 물결에 휩쓸려 누군가와 몸이 닿는 건 싫었다. 조금이라도 닿으면 남은 기운까지 빼앗겨버리는 기분이었다. 최대한 버스 벨을 빨리 누르고 내려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이제 버스 벨을 누르는 건 식은 죽 먹기다. 그렇다고 용감해졌다는 것은 아니다.
집에 오자마자 침대에 드러누웠다.
[밥은 먹고 자라.]
아빠가 말했다. 주방에 가니 식은 햄버거가 있었다.
[갑자기 웬 햄버거?]
[퇴근하는 길에 사 왔어. 이번에 새로운 버거 나왔더라고]
나는 재빨리 햄버거 하나를 꺼내 TV 앞 소파에 앉았다. 아빠가 요즘 푹 빠진 예능은 나는 솔로였다. 밖으로 삐져나온 양상추를 우걱이며 같이 티브이를 봤다.
[너 요즘 만나는 사람은 없니?]
[그건 왜?]
[너도 이제 결혼해야지. 연애도 하고.]
[때가 되면 알아서 하겠지.]
[너도 저런 프로그램에 나가는 건 어떠니?]
[말도 마 아빠. 난 TV에는 못 나간다.]
[저 사람들보다 네가 훨씬 예쁜데. 저런 사람들도 나가는데 네가 왜 못 나가겠니.]
[나는 저런 프로그램에 나갈 용기 없어.]
[무슨 용기가 필요하겠니. 그냥 나가는 거지.]
용기가 없다고 늘 자부하며 모든 일들을 망설였던 내가 문득. 어릴 적 용기가 없어 도전하지 못했던 일들을 할 수 있음을 알게 되며 문득. 용기란 정말 허구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햄버거 패티와 같이 생각을 곱씹었다. 내가 용기가 없어서 도전하지 못했던 일들을 생각했다. 혼자서 해외여행 가기. 엄마랑 싸우기. 친구에게 서운한 점 이야기하기. 고등학교 선생님께 연락드리기.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기. 맛있는 급식 한 번 더 받기. 밖에서 혼술 하기. 그리고 이 글에 솔직하게 용기 내지 못했던 일들을 이야기하기.
참. 별거 아닌 일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