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행 - 여름 안에서

by 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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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덥지근한 여름날 우리는 오사카로 떠났다.

사람들이 말렸다. 그 더운 날에 왜 더운 나라로 여행을 떠나냐고. 사실 더운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가 A와 같이 어딘가로 떠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실제도 도착한 오사카는 굉장히 더웠다. 여름의 일본은 처음이었는데. 한국의 더위를 애써 잘 견디는 나에게 일본 더위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끈적끈적한 습기가 나를 덮치고 이를 피해보려고 숨을 들이켜고 내쉬면 후덥지근한 공기가 나를 에워쌌다. 쉴 새 없이 땀이 흐르고 도심 한가운데 피할 곳은 없다. 정수리가 아주 따끈해진다. 아니, 따끈해지다 못해 뜨거워진다. 머리가 아득해진다. 더위를 먹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는데, 이제야 알 것 같다. 무지가 가장 무서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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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여름은 우리의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했고, A와 나는 이겨내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10분 이상 걸어야 하는 일이 생기면 근처 스타벅스에 들려 얼음이 들은 음료를 구매했고 무선 선풍기를 함께 작동하며 더위를 물리쳤다. 음료를 다 먹어버리면 시원한 녹차 아이스크림을 샀다. 너무 빨리 녹아버리는 탓에 하나를 사서 나눠 먹었다. 그럴 때면 A는 나에게 먼저 아이스크림을 건넸다. 더위에 지쳐 이타심을 저버릴 수 없기에 한사코 거절했지만 기어코 내 입에 아이스크림을 물어주는 A였다. 부드럽고 시원한 크림이 내 입에서 흘러가는 시간 동안은 더위를 잠깐 잊은 듯하였다. 그래도 모든 무더움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었다.

마지막 날 숙소에서 공항으로 가는 길이었다. 온갖 기념품이 들어 한껏 무거워진 캐리어를 오른쪽 손으로 잡고, 그 외의 캐리어로 들어가지 못한 물건들을 넣은 종이가방과 크로스백을 온몸에 거들었다. 덕분에 음료를 들 손이 없었다. 무선 선풍기는 이미 캐리어로 들어간 지 오래였다. A와 나는 캐리어와 가방을 들고 공항을 가기 위해 걸었다. 가끔은 길을 잃어 걸었던 거리를 다시 걸어야 했다. 속으로 나의 인간성을 간신히 붙잡으며 옅은 미소를 뗬다. 나보다 힘이 셌던 A가 큰 이동이 있을 때면 캐리어를 들어주었다. 그럴 때 A는 나와 같은 옅은 미소를 뗬다.

겨우겨우 공항으로 향하는 전철에 탑승했다. 한국의 전철은 참 시원한데. 일본의 전철은 여전히 우리에게 고난이었다. 내리쬐는 햇빛은 없었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움직일 수 없었고 사람들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열기와 습기가 우리를 다시 삐질이게 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옅은 미소만 띤 채 이 순간이 어서 지나가길 기도했다. 공항에 도착해서도 고난은 계속되었다. 위탁 수화물 무게를 맞추기 위해 캐리어를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며 물건을 빼고 실었다. 수화물의 무게를 맞춘 뒤에는 수속을 밟기 위해 1시간 이상 줄을 서야 했다. 이렇게 더운 오사카에 사람들은 왜 이리 많이 놀러 온 건지. 다들 오사카의 더위쯤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겠지. 그렇다면 큰 오산이라는 걸 공항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알게 되었을 것이다. 수속을 마치고 탑승구 안으로 들어왔다. 더위에 몸이 녹아내려도 허기는 참을 수 없었다. 우리는 남는 시간에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 식당은 단 하나였고, 이미 자리는 만석이었다. 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눈치 싸움을 하며 절반 정도 먹어가는 사람들의 주위를 서성거렸다. A는 나에게 캐리어와 짐을 들고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고 A는 테이블 주위를 빙빙 돌며 자리를 탐색했다. 다른 사람과의 눈치 싸움도 거뜬히 견뎠다. 30분간의 전쟁 끝에 작은 자리 하나를 선점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간신히, 아주 간신히 우리는 저녁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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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카레와 가라아게였다. A는 열심히 카레를 섞었다. 그러더니 나에게 첫 입을 건넸다. 나는 한사코 거절했지만 결국 카레가 내 입으로 들어왔다. 눈물이 났다. 애써 눈물을 감추기 위해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고 그런 모습을 보며 A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다정한 사람. 뜨거운 여름 안에서 나는 사랑을 봤다.


그리고 나는 그 이와 결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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