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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 W Oct 09. 2024

어떤 권리증

  은퇴 후 우리 내외는  년째 딸네 집 근처에 와서 살고 있다. 같은 아파트 다른 동에 살며 수시로 들락날락하며 지낸다. 여느 때처럼 아내가 딸네 집에 갔다 왔다. 카드 같은 것을 들고 와서 좀 보라고 호들갑을 떤다.

  “여보, 여보 이것 좀 봐봐, 서윤이(5세, 손녀)가 며칠 전 어린이집에서 이걸 들고 왔는데 서윤이 에미가 이걸 보여 주면서 나보고 가지고 있으라고 하네.”

표정을 보니 뭔가 기분 좋은 일이 있는 모양이다. 어버이날을 맞아 어린이집에서 행사한 결과물 중에 하나인 것 같다.      


  마분지로 된 A5용지를 반으로 접어서 두 장으로 만든 것이다. 첫 장은 색종이로 만든 빨간 카네이션 꽃이 첫 장 절반을 차지하고 있고 녹색 잎 두 장이 꽃 바로 아래 달려 있고 그 밑으로 기다란 노란 리본 두 장이 아래로 내려져 있는 데 한 장에는 ‘엄마♡’, 다른 장에는 ‘아빠♡’ 이렇게 세로로 적혀 있다. 그러니까 색종이로 만든 큼직한 빨간 카네이션 꽃을 만들어 첫 장에 붙여 놓은 것이다. 한 장 넘기니 손녀딸 서윤이의 환하게 웃고 있는 큼직한 얼굴 사진이 미리 인쇄된 어린이 그림의 얼굴 부분에 붙여져 있다.    

  

  양손은 V자를 내밀었고 나비넥타이처럼 맨 녹색 리본이 기다랗게 아래로 늘어뜨려져 있는 데 한쪽에는 ‘20년만 기다려 주세요’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호강시켜 드릴게요.’라고 적혀 있다. 양쪽장 모두 옅은 주황색 줄무늬로 테두리를 하였고 각 모서리에는 같은 주황색으로 사진을 꽂을 수 있도록 한 모서리를 그려 놓아서 마치 이 권리증이 네 모서리에 꽂아져 있는 느낌이 들도록 되어있다. 오른쪽 장에는 “호강 권리증”이라고 쓰인 제목 바로 윗부분에 카네이션 꽃을 들고 웃는 모습을 하고 있는 남녀 꼬맹이 작은 그림을 사이에 두고 봉황새 두 마리가 서로 마주 보고 제목글 ‘호강 권리증’을 감싸며 긴 꼬리를 아래로 우아하게 내려뜨리고 있는 모습이 이 증서를 제법 그럴듯하게 보이게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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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강 권리증     

권리자: 김서윤 어머님, 아버님     

상기 본인 김서윤은 2024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사랑으로 낳아 주시고, 키워주시는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호강 권리증]을 전달해 드립니다.     

다만, 상기 본인이 더 많이 커야 하기에 호강실행은 20년 후에 가능함을 양해 바랍니다.     

향후 20년간은 많은 속 터짐과 주먹 불끈을 경험하시겠지만 깊고 깊으신 이해심으로 인내해 주시면 “몸 튼튼 마음 튼튼”으로 보답하겠습니다.      

                 2024. 05.08.

                 김서윤 드림      


그리고 그 밑에 본인(5살짜리)이 제법 반듯하게 손글씨로 자기 이름을 적어 놓았고 오른쪽에는 손도장을 찍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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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호강 권리증을 읽고 나서 아내와 나는 무척 색다른 기분을 느꼈고 잠시나마 즐겁게 웃을 수 있었다.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누군가 이런 멋진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 것이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놓은 문구가 재치 있고 유쾌해서 저절로 미소를 짓게 만드는 것 같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많은 엄마 아빠들이 힘들게 어린아이를 키우다가 잠시나마  즐겁게 웃고 흐뭇해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특히 ‘향후 20년간은 많은 속 터짐과 주먹 불끈을 경험하시겠지만 깊고 깊으신 이해심으로 인내해 주시면 “몸 튼튼 마음 튼튼”으로 보답하겠습니다.’라는 대목에서는 쌈박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딸내미가 서윤이(손녀)만 했을 때는 어땠을까, 저절로 그 모습이 떠오른다. 딸 밑으로 두 살 아래 남동생이 있는데, 그 당시 우리 부부는 둘 다 직장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아이들을 전적으로 돌볼 수 없었다. 그 점이 지금도 생각해 보면 애틋하게 다가온다. 아주 어렸을 때에는 양가 부모님들이 돌봐 주셨지만 어느 정도 컸을 때는 어린이집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아침이면 둘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퇴근 후 데려 오는 식이었다. 헤어지지 않으려는 두 아이를 달래느라 진땀을 빼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래도 큰 애는 두 살 많은 누나라고 동생을 제법 잘 다독거리곤 했다.  


  하루는 집에서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울지 말라고 달래 놓고 약속까지 받았는데 막상 어린이집 문 앞에서 ‘빠빠이’ 하고 돌아서는 데 동생이 ‘엄마~’ 하고 자지러지게 우는 바람에 엄청 난감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도 그때의 그 모습이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다.     

  지금은 그 아이들이 큰 애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작은 아이도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경기도에서 잘 살고 있다. 이제는 그 딸아이가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자신의 딸내미한테서 받은 ‘호강 권리증’을 엄마한테 보여주면서 가지고 있으라고 한 것이다. 쑥스러워서 차마 ‘엄마, 호강시켜 드릴게요’라는 말을 못 하고 슬쩍 그 증서를 내미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가끔은 ‘속 터짐, 주먹 불끈’으로 엄마, 아빠의 ‘인내심’을 시험한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잘 자라주었고 ‘몸 튼튼 마음 튼튼’ 뿐만 아니라 은퇴한 엄마, 아빠의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고 친구가 되어주는 딸내미에게 고맙다는 말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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