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질방에서

에세이

by Ian W



찜질방에서


군불 때던 따뜻한 방이 그리운 시절이 되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기운이 돌 때는 더욱 그런 기분이 든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는 따뜻한 찜질방이 생각난다. 찜질은 체온 상승, 혈액순환 개선, 빠른 피로회복, 면역력 강화, 스트레스 해소 등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어제 집사람이 친구들과 다녀온 찜질방 자랑을 하며 가자고 한다. 11시부터 문을 연다고 하니 10시 반 경에 출발하면 될 것 같았다. 찜질방은 구 시내 상가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도로 뒷면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올라가려고 하는데 계단 입구에 ‘1984. 12. 17.’이라는 숫자가 적혀있다. 준공한 날짜를 새겨놓은 것 같았다. 지은 지 40년 다 되어 간다는 얘기다. 그렇게 오래된 건물치고는 제법 깨끗하게 관리해 놓은 것 같았다. 2층에 있는 찜질방에 들어서니 어떤 중년 아주머니 한 분이 반갑게 맞이해 준다. 18평 정도의 실내에 8인용 건식 원적외선 찜질기 하나, 남녀 탈의장에는 개인 사물함이 각각 8개, 원형탁자 하나, 간이침대 3개, 안내 데스크가 전부였다.


아내와 나는 반팔 티, 반바지 찜질복으로 갈아입고 찜질방에 들어섰다. 60 전후로 보이는 여자 한분이 누워계셨다. 물병과 컵이 여러 개 있었고 밖을 볼 수 있도록 출입문은 유리로 되어 있었다. 물 한잔을 마시고 누웠다. 바닥이 따끈따끈하니 온몸이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 여자분이 “이 동네에서 오셨어요?”라고 물으며 말을 건다.” “아니요, 00동에서 왔어요. 차로 약 30분 정도 걸렸어요”라고 아내가 대답했다. “이 시간이 제일 조용해서 나는 계속 이 시간에 와요. 오후에 오면 사람들이 많아서 박작박작해요. 이 시간이 제일 좋은 시간이에요”라고 하신다. 그래서 나도 “그렇군요 우리도 오전 시간에 와야겠네요.”하며 말문을 트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나니 등줄기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땀을 좀 식히려고 밖으로 나와서 원형 탁자에 않았다.


원형 탁자 한쪽에 샤인 머스켓 포도가 한 바구니 담겨 있었다. 상당히 먹음직스러웠지만 함부로 먹을 수는 없어서 보기만 하고 있었다. 조금 있으려니 아까 그 할머니께서 나와서 옆 자리에 앉았다. “포도 좀 잡숴 보세요, 끝물이라 좀 따 가지고 왔어요” 하신다. “그래요? 여기는 사람들이 먹을 것을 싸가지고 와서 나눠먹고 하는 모양이지요? 포도가 정말 먹음직스럽네요.”하며 맛있게 먹었다. 이어서 그분 얘기가 이어진다 “여기는 사람들이 전부 인심이 좋아서 뭐라도 가지고 와서 나눠 먹고 그래요.” 하신다. ‘아 이런 분위기구나’ 속으로 생각하며 “아 그래요? 우리도 다음번에는 달걀이라도 삶아 와야겠네요”하며 한마디 거들었다. 젊은 시절 비교적 까칠한 성격이었던 나도 이제는 나이가 들고나니 이런 분위기가 싫지 않고 뭔가 사람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좋았다.


땀이 나서 옷도 젖은 상태여서 그런지 금방 한기를 느꼈다. 아내와 나는 다시 찜질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 할머니도 같이 따라 들어왔다. 조금 있으니 어떤 할머니 한 분이 또 들어오신다. 옆에 있던 할머니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서로 잘 아시는 분 같았다. 두 분이서 하시는 이야기가 끝이 없었다. 아내가 “어제 오셨던 분 아니세요? 그 손이 예쁜 분?”하며 이제 생각이 났다는 듯이 말을 걸었다. ‘누군가’ 하고 자세히 보시더니, “아, 그렇군요. 어제 오셨던 분이시네요, 친구분 들하고...”하시며 뒤늦게 반가워하신다. “아이고 난 60평생 이날 이때까지 살았어도 내 손 예쁘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 봐요 하하하하...”하며 기분 좋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럼, 어디 한 번 제가 판단해 볼까요?”하며 나도 평소와는 다르게 한마디 거들었다. 그분이 약간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지만, “아이고, 손이 엄청 예쁘시네요”하며 먼발치서 보는 시늉을 하였다. “자세히 보면 더 예쁘게 보이겠어요.” 어느 시인의 싯구절을 떠올리며 덧붙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한술 더 뜨고 보자는 속내였다. “아이고, 그래요? 처음 보시는 분인 것 같은데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시는군요.”하시며 즐거워하신다.


그렇게 한 번 얘기를 트고 나니, 서로 쉽게 이야기가 술술 풀린다. “나는 무릎이 아파서 매일 여기로 와요, 찜질하는 시간이 내가 유일하게 위로받는 시간이거든요.”하신다. 나도 요즘 들어 왼쪽 무릎이 아파서 병원에 다녀온 터라 남 얘기 같지 않았다. “무릎이 어떻게 아픈데요?”라고 물었더니, 아내가 “처음 보는 여자한테 뭐 그런 걸 묻고 그래요?”하며 겸연쩍다는 듯이 웃는다. “뭐, 육십 넘으면 남자 여자 따로 있나? 이런 곳에서는 그냥 이런 얘기 저런 얘기할 수도 있는 거지”라고 들으라는 심사로 큰 소리로 대꾸했다. 그 아주머니 그제야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를 이어간다. “뭐 “젊었을 때부터 아팠는데 어느 날 왼쪽 무릎 뒤쪽에 자꾸 물이 생겨서 병원에 가서 물을 자주 빼냈어요, 물 생기는 관절염이 제일 좋지 않은 경우라고 그러데요. 큰 병원에도 가서 치료해 봐도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양방에서 치료가 안되니 한방에도 가봤는데 마찬가지였어요. 이제는 이렇게 찜질방에 다니면서 잠깐이나마 위로를 받고 살아요, 무릎이 아파서 운동을 못하니 이렇게 자꾸 뚱뚱해지기만 하네요.”하며 한숨을 푹 내쉰다. “무릎이 아프면 최고 좋은 운동이 수영인데 수영이라도 좀 하시지 그랬어요? 아니면 물에서 걷는 것도 괜찮고”라고 하니, “아이고 나는 물에 대한 공포가 심해서 물에 들어가지도 못해요, 얼마 전에 아쿠아로빅 반에 들어갔었는데 물이 얼마나 겁이 났던지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어요. 강사가 기겁을 하고는 밖으로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참 별 희한한 일도 있구나’하면서 “어릴 때 물에 대한 공포를 느낄만한 사건 같은 것이 있었나요?”하고 물었다. “아니요 그런 일 없었어요 원래 그냥 그래요.”하신다. 나와 아내는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계속 이야기로라도 뱉어내서 스트레스를 풀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연신 “그래요? 그래서요?”하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이번에는 찜질방 주인 얘기다. “지금은 여자분이 운영하는데 오늘은 집안 제사 때문에 가고 없어요. 작년에는 남자분이 운영했었어요. 지금 주인의 남편이지요” 그 소리에 아내가 “아무래도 남자들이 운영하면 깔끔하지 못하고 그렀잖아요?”하며 은근히 동의를 구하는 투로 말했다. 그랬더니 손사래를 치며 “아니요, 이 집주인은 얼음알같이 깔끔했어요. 수건이나 찜질복을 건조기롤 돌려서 말려도 되는데 꼭 이 건물 옥상에 가지고 올라가서 널어서 말리고는 일일이 차곡차곡 개곤 했어요. 청소도 얼마나 깔끔하게 했는데요. 그런데 작년 연말에 가족들과 같이 포항 호미곶에 해맞이 여행을 갔다가 사고로 돌아가셨잖아요.” 나와 아내는 깜짝 놀라며 “예? 어째서요?”하며 그다음 얘기를 재촉했다. “포항 호미곶 해맞이 행사 같은 것이 있을 때는 원래 사람들이 많이 몰리잖아요. 그런데 그날따라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서 발 디딜 뜸이 없었다네요. 해를 보고 내려오시다가 사람들에게 밀렸는지 발을 헛디뎠는지 돌이 많은 곳에서 그만 뒤로 넘어지셨데요. 머리 뒷부분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는데 멈추지가 않았데요. 그래서 119에 긴급히 전화를 해서 응급차를 타고 포항에 있는 병원에 입원하셨답니다. 평소에 심장병 때문에 아스피린 같은 약을 복용하고 계셨는데 그 약 때문에 피가 계속 멈추질 않았다네요. 그래서 결국은 입원한 지 사흘 만에 돌아가셨다더라고요.” 아내와 나는 망연자실하게 듣고 있다가 아내가 “하여간 사람 많은 곳에는 아예 안 가는 게 상책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맞아요, 저번 이태원 사고도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서 그랬잖아요”하며 내가 맞장구를 쳤다.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아내분이 저하고 같은 성당에 다니고 있어서 잘 아는 사이인데, 갑자기 그렇게 남편을 보내고 나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함께 해맞이 여행을 갔다가 그렇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겠지요. 꼬박 석 달 동안 거의 두문불출하다시피 하며 집안에만 처박혀 있었데요. 그러니 이 찜질방은 계속할 엄두도 못 냈겠지요. 그러다가 어찌어찌 정신을 차리고는 이 찜질방을 이어 가고 있는 중이랍니다.” 아내와 나는 숙연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배가 고파오기 시작하는 걸 보니 이제 점심시간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핸드폰 시계를 보니 열두 시 반이었다. “여보, 전에 이 근처에 옹심이 잘하는 집이 있다고 들었지? 우리 거기 가서 점심 먹을까?”아내에게 물었다. “카톡 ‘길 찾기’에서 찾아보고 가면 되는데 나가기가 귀찮네”아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 ‘무릎 아주머니’(무릎 아프다고 하신 분)가 바로 이렇게 얘기한다. “내가 옆 사무실에서 찰밥을 해놓았어요. 반찬은 없지만 그거라도 같이 드실래요? 미역국, 김치도 있고 나물도 무쳐왔어요.”하신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듯이 좀 전에 아내가 손이 예쁘다고 칭찬한 것이 효과를 발휘하는 것인지 흔쾌히 호의를 베풀려고 하신다. 아내의 의사를 물었다. “여보, 그럴까? 다음에 우리가 옹심이라도 대접하면 되지 뭐.” 그러자 그분이 말을 받아 “아이고, 옹심이는 뭘요 그냥 한 솥 해놓았으니 같이 식사하시면 돼요.”하신다. 2층 바로 앞에 있는 ‘00 물류센터’ 사무실 사장님은 찜질방 주인 지인이어서 가끔 이렇게 사용하기도 한단다. 그렇게 하여 미역국에 찰밥, 갓 만들어진 나물무침을 맛있게 먹었다. 그 아주머니 연신 반찬도 없는데 점심을 먹자고 해서 실수한 것 아니냐며 미안해하신다. 올 겨울에는 왠지, 어린 시절 군불 때던 그 사랑방을 찾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