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듣기 문항은 40문항 정도 되었던 것 같았다. 모두 두 번씩 반복해서 들려줬는데 거의 뚜렷이 들렸기 때문에 아마 거의 다 맞추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와우! 그런데, 여기서 반전, 이어지는 상식 테스트, 면접관과 일대일 구두로 치렀는데 ‘도대체 이게 상식이 맞나?’ 할 정도였다. 다섯 문항 중에서 한 문제도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정말 이렇게 상식이 부족한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응시자가 큰 교실에 꽉 찼으니 한 사십여 명 되었던 것으로 생각되었다. 과학교사 아이오와 한 달 연수 선발시험을 0000 교육청에 출장 와서 치른 것이다.
아이오와 대학교 연수 선발시험을 치른다는 공문을 봤을 때 ‘와우, 이건 천재일우의 기회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 듣기 시험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EBS 영어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꾸준히 공부를 해왔고 특히 ‘라디오 중급 영어회화’ 프로그램은 전 과정이 영어로만 진행되었기 때문에 영어 듣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무튼,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다. ‘과학교사 중 영어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결과는 알 수 없는 일, 0000 전체에서 2명이라니... 상식테스트, 그게 발목을 잡는 것 같았다. 한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결과가 궁금해서 담당 장학사님께 전화를 걸었다.
“장학사님, 00 00 00 고등학교 000입니다. 아이오와대학교 과학교사연수 선발시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전화했습니다.”
“아직, 결과가 안 나왔습니다. 전화까지 하는 것을 보니 시험을 잘 본 모양이지요?”라고 하신다.
너무 궁금해서 이후로도 한 차례 더 전화를 했다.
며칠 뒤 선발되었다는 공문을 확인했다. 몇 년간 영어 공부를 한 보람을 느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이런 시험이 작년에도 있었고 몇 년 되었다고 한다. 작년에는 연수기간이 한 달 반이었는데 예산이 삭감되어 올해부터 한 달로 줄었다고 한다.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사립학교인 ‘00 00 고등학교’에 있었는데 거기서는 이런 공문이 왔다는 것조차 전달받은 적이 없었다. 있다고 해도 방학 때 보충수업을 해야 하니까 연수를 보내주지 않으려는 경향이었다.
00에서 멀리 떨어진 동해안 00에 있었기 때문에 전화로 집사람에게 제일 먼저 소식을 알렸다. ‘영어공부 시작하기를 정말로 잘했네, 선견지명이 있었네’ 라며 좋아했다. 장인장모님도 ‘올해 공립학교로 이동되더니 또 미국연수 시험도 합격하고 경사가 겹쳤다’고 하시며 좋아하셨다고 한다. 미국에 한 달간 생활하려면 그 비용이 만만찮을 건데 공짜로 다녀오니 엄청난 혜택이 아니겠는가. 과학교사들 사이에 인기 있을 수밖에 없는 프로그램인 것 같았다.
하루 홈스테이가 계획되어 있으니 홈스테이 주인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라고 한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고민해 보았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물이라... 하회탈이 생각났다.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 마을에서 전승되어 오는 별신굿 탈놀이에 쓰이는 탈이다. 그 웃는 모습이 보면 볼수록 웃음이 나올 듯한 모습이다. 왠지 하회탈이 마음에 들었다. 안동으로 직접 가서 큼지막한 것으로 거금을 주고 사 왔다.
2001년 7월 00일. 대구 공항을 거쳐 인천 국제공항에 집결했다. 전국에서 모인 과학교사들이 거의 사십 명 가까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0000 대표로 선발된 또 다른 선생님 한분은 대구 근처에 계시는 분이었다. 그분 얘기가 뜻밖이었다. 자신은 0000 교육청 장학사님들과 친분이 있는데 며칠 전 00 교육청에 인사차 들렀다고 한다. 장학사님 말씀이 ‘도대체, 0 선생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야? 연수에 합격시켜 줬는데 코빼기도 안내밀고...’라고 하셨다고 한다.
사립학교에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교육청에는 거의 들를 일이 없었다. 그러니 내가 누군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원래 ‘사바사바’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대개 이런 연수는 공로연수정도로 간주되어 사전에 도내 과학교사 중에서 후보자가 대충 예상되어질 수 있는 상태에서 선발시험을 치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영어 듣기 시험 결과로 예상밖의 사람이 튀어나온 게 아닌가 싶디. 당사자가 전화도 하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니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전화 몇 번 했다고 해서 선발시켜 주었을 리는 만무하다. 아무튼 그 선생님 말로는 장학사님들께 찍혔다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라도 한번 들르라는 말을 덧붙였다.
저녁에 인천공항에서 출발하여 밤새도록 날아서 미국에 도착했다. 그리고 몇 시간 더 버스를 타고 아이오와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은 아이오와에서 ‘랜드마크’라고 할 정도로 시내 중심에 있었고 호텔 앞에는 분수대가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 올리고 있었다. 아이들 몇 명이서 온몸으로 물장난을 즐기고 있었다. 한 방에 2명씩 배정받았는데 경상남도 선생님 한 분과 룸메이트가 되어 8층에 배정받았다. 짐을 풀고 아이오와 대학교로 건너갔다. 걸어서 15분 정도의 거리였다.
아이오와 대학교 강당에 모여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다. 담당교수님은 70대 정도 되어 보이는 키가 큰 남자 교수님이었고 인상이 무척 좋은 분이셨다. 미국에서 과학교육에 대하여 권위자라고 하였다. 보조 교수님 두 분이 소개되었는데 한 분은 40대 초반의 호리호리한 체격의 노처녀라고 하였고 박사과정 중이라고 한다. 한 분은 50대 초반의 여자분으로 갈색 생머리가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길러져 있었다. 그리고 통역 겸 진행을 보조하실 남자 선생님이 한 분이 소개되었는데 아이오와 대학교 과학교육분야 박사과정 유학생이라고 하였다.
교육은 모듈별로 4~5명씩 조를 짜서 진행되는데 주로 과제가 주어지고 조별로 실험을 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힘들게 진행되었다. 처음 며칠 동안 연수결과물을 작성해야 하는 문제로 모두가 압박감을 받았다. 그러나 회의 결과 회장단 선생님들이 작성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어 훨씬 홀가분한 마음으로 연수에 임할 수 있었다.
아이오와 주변 탐방이 무척 궁금했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주말시간 그리고 연수일과가 끝난 저녁시간이 전부였다. 벌써 선생님들 사이에는 삼삼오오 주변 탐방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주말에는 렌터카를 빌려서 어디 어디로 여행한다는 둥 저녁에는 어디 어디로 간다는 둥 모두들 신나게 즐거운 계획들을 세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드디어, 아이오와 다운타운으로 탐방해 보기로 한 날이다. 나를 포함한 몇몇 남자 선생님들이 택시를 타고 시내로 갔다. 운전기사에게 맥주 한잔 할 만한 곳에서 내려 달라고 하였다. 제법 큰 맥주집에 들렀다. 내부는 거의 손님들로 꽉 차 있었고 한쪽에서는 쇼걸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특이한 점은 맥주를 잔에 따라 마시는 것이 아니고 거의 모두가 병째로 마시는 것이었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노랑머리의 키 작은 빵빵한 한 백인남자가 내 옆에 와서 앉는다. 귀에는 구멍을 뻥뻥 뚫어 단 귀걸이가 몇 개씩 되었다. 이미 술이 어느 정도 취한 것 같았다. 한국 사람이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하니 느닷없이 우리말로 “대한민국” 구호를 외치며 ‘짝짝짝 짝짝’ 손뼉을 친다.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 반갑게 웃으며 연신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여기에서 그 구호를 들으니 새삼스럽기도 하고 무척 반가웠다. 지난해에 우리나라 월드컵 축구팀이 4강까지 갔으니 그 구호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다. 지나가는 서빙 걸에게서 맥주 한 병을 받아 들더니 고갯짓으로 나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그 서빙걸이 나보고 맥주 값을 지불하라고 한다. 둘은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이 같았고 그런 일련의 과정이 너무나도 익숙한 듯 보였다. 순간, 불쾌한 기분이 들어 따지고 싶었지만 참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곳에서 이런 것으로 분란을 일으켜 봐야 이방인인 우리에게 좋을 것이 있겠는가’하는 생각이었다. 마음속으로 ‘요놈들이 미국망신 다 시키고 있구나, 미국에도 요런 놈들이 있다니’하고 말았다.
며칠 후, 홈스테이 날이다. 모두 미국 현지 가정에서 하룻밤 머무는 것에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각자 나름 괜찮은 선물들을 준비한 것 같았다. 강당 같은 곳에 모였고 호스트 분들도 몇 분 참석하셨다. 두 사람씩 조를 이루어 한 집에 배정되었다. 우리 팀은 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백인 아주머니 댁으로 정해졌는데 남편은 근처 고등학교 화학 선생님이라고 한다. 다른 팀과 달리 우리는 세 팀이 이 집에 배정되었다. 세 팀이 모두 그 집으로 가서 저녁식사를 하고 준비한 선물을 주었다. 두 팀은 저녁을 먹고 주변에 있는 다른 집으로 가서 밤을 보내야 한단다. 이 집에서 관리하고 있지만 평소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고 한다.
다른 선생님 한분과 하룻밤 묵을 곳으로 갔다. 2층 단독주택이었다. 저녁식사 후 집주인과 이런저런 얘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겠다는 기대를 했는데 이건 정말 뜻밖이었고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라니. TV도 없고 집이 썰렁했다. 우리가 잘 방은 2층이라고 한다. 일찍 잠자리에 들 수밖에 없었다. 몇 시쯤 되었을까? 아래층에서 떨거덕 거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한동안 계속 그 소리가 들리더니 잠잠해졌다. 무슨 일인지 궁금했지만 내려가서 확인해 볼 엄두를 못 냈다. ‘여기는 미국이니 만약에 강도나 도둑이라면 총도 가지고 있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침 식사하려 원 집주인집에 가서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가끔 동네 노숙자들이 빈집이라는 것을 알고는 몰래 자고 가기도 한다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너무 황당한 일이다. ‘노숙자들이 자는 빈집을 가지고 홈스테이 한다며 그 비용도 챙기고 선물도 챙기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니 은근히 화가 났다. 한껏 기대에 부풀었던 홈스테이가 그렇게 끝나버렸다.
어느 날 점심식사를 마치고 여유가 있는 시간이 있어서 호텔 앞 분수가 있는 광장 벤치에 혼자 나가 앉아 있었다. 아이들 몇몇이 옷이 젖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장난을 치며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그 아이들을 보고 있었는데 어떤 아가씨 한 명이 분수대 언저리를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보리색 반소매 웃옷, 발목까지 오는 찰랑거리는 긴치마, 어깨까지 오는 약간 웨이브가 있는 갈색머리, 하지만 무엇보다 눈매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좀 더 가까이 다가왔을 때 나와 눈동자가 마주쳤다. 눈을 뗄 수가 없어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 여자도 눈을 돌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내 앞을 지나간다. 브룩실즈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입술이 훨씬 가늘어 보였다. 아, 예쁘다!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한 1분 정도 앉아 있었을까? 불현듯, ‘놓치지 말자, 따라가서, 무조건 말이라도 붙여보자.’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어떻게 나에게 그런 용기가 났는지 의아할 정도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빠르게 걸어갔다. 사람들 사이로 뒷모습이 보인다. 가까이 가서 말을 붙였다. “하이! 날씨가 좋지요? 같이 걸어도 될까요?”라고 하니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환한 미소로 답을 한다. 아마, 어떤 동양 남자가 자기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으니 자기도 인식을 하고 있었던 같았다. 그렇게 대화가 시작되었고 나란히 걸었는데 키가 나와 거의 비슷한 것 같았다. 간단히 내 소개를 하니 그 여자는 아이오와 대학교 학생인데 지금은 휴학 중이고 집에 가는 길이라고 하였다. 한 10분 정도 같이 걸었을까? 길옆에 있는 작은 집을 가리키며 자기가 룸메이트랑 머물고 있는 집이라고 한다. 그날은 그렇게 전화번호만 받고는 호텔로 돌아왔다.
며칠 후 이른 저녁 시간에 전화를 걸어 ‘J’의 집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아이오와대학교 쪽으로 걷다가 대학 캠퍼스에 도착하여 나무 그늘이 있는 벤치에 앉았다. 이상하게 각자 신상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았고 물어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냥 주변에 있는 것들에 대하여 눈에 띄는 대로 가볍게 대화를 이어 갔다. J는 말수가 적은 편이었고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하는 정도였다.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지 하는 괜한 의무감이 생겨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다 보니 어떨 때는 내가 생각하기에도 서툰 영어가 튀어나왔고 그럴 때면 J는 그게 무슨 말이냐며 되묻기도 하였다.
다시 시내로 걸어가면서 대화를 하는 도중, 나에게 춤추는 것을 좋아하느냐고 묻는다. 그리고는 어디 가서 춤을 실컷 쳐보고 싶다고 한다. 나는 사실, 내 평생에 춤추러 다녀 본 적이 거의 없었고 춤추는 것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말을 얼버무리고는 지나쳐 버렸다. 코너를 돌아서니 멕시코 요리를 하는 곳이 보였다. 뭐 좀 먹자고 하고는 가게로 들어섰다. 서서 음식을 주문해서 먹는 작은 간이식당이었다. 살짝 구운 도우에 옥수수 낱알과 야채, 소스, 샐러드 같은 것을 넣고 말아서 먹는 요리였는데 아마 ‘토르티야’ 비슷한 것 같았다.
그렇게 간단히 저녁을 먹고 걷다가 영화 보러 가자고 제안했다. 근처 1층에 있는 작은 영화관을 찾았는데 좌석이 약 80석 정도 되어 보였고 반 정도 좌석이 찬 것 같았다. 내 평생 처음으로 한글 자막 없이 영어로만 된 영화를 보게 되었다. 약간 공포영화 같은 미스터리극이었다. 완전히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대략적인 스토리만 이해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영화를 마치고 왔던 길을 천천히 걸었다. 저녁 기온은 그렇게 덥지도 않았고 걷기에 아주 좋은 날씨였다. 다시 아이오와 호텔 앞으로 돌아와서 분수대 옆 벤치에 앉았다. 사람들 발걸음이 거의 끊긴 상태였다. 시계를 보니 밤 열두 시가 훨씬 넘었다. 갑자기 피곤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J도 피곤해 보였다. 잠시 말없이 앉아있었다. J가 먼저 침묵을 깬다. ‘지금 이 시간에 자기를 집까지 데려다 줄 거냐고.’ (“Are you going to take me home at this hour?”) ‘지금 J의 말은...’. 잠시 마음속으로 갈등이 생겼다. 하지만 집까지 다시 데려다주는 것 외에는... 며칠 후 귀국길에 올랐다.
Good bye Iow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