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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물젤리 Feb 25. 2023

길에서 만난 착한 할머니

네 살 이야기

요즘 미남이는 모든 일을 착한 것과 나쁜 것으로 구분하는 재미에 맛을 들였다.


육교를 내려가다가 계단에 있는 비둘기똥 흔적을 보고

계단에 똥 쌌으니 나쁜 비둘기라고 했다ㆍ


쌓인 눈이 고였다 녹은 물 때문에 미끄럼틀을 못 타게 됐다며 눈밭에서 실컷 썰매를 탔던 녀석이 의리도 없이 눈도 나쁘다고 했다.


다섯 시면 일을 마치는 지하철 공사장에 밤까지 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사님들이 나쁘다고 했다ㆍ


정작 미남이는 어제만 해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길가화단 구석에 숨어 쉬를 했고

길에서 먹이 활동하는 비둘기를 매정하게 쫓았으며

저녁에 더 놀아보겠다고 나를 잡고 생떼를 부리는 바람에 할아버지가 주차장에서 한참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비둘기도 나쁘고 흰 눈도 나쁘고 제시간에 퇴근한 기사님도 나쁜 거면 내가 볼 때 미남이는 구치소 수감 감이다.


게다가 내가 세 살 때 혼낸일을 해를 넘기고도 사골국물처럼 우려먹더니 그것도 모질라  비둘기랑 눈이랑 공사장 기사님 쪽에 뜬금없이 나까지 줄을 세워 억울하게 만들었다.



 "미남아, 미남이 같은 아이들은 너무 소중하잖아"

"네에"

""나쁜 사람은 절대 아이들을 돌보면 안 되는 거야"

"그래요?"

"할머니는 나쁜 사람이잖아?"

".........."

"그렇기 때문에 내일부터는 널 돌볼 수가 없게 돼서 다른

착한 할머니가 오실 거야"



"사실은 할머니는 엄청 착한 할머니예요, 헤헤헤"

헤벌쭉 웃으며 날 쳐다

.

.

.


볼 줄 알았다.


"그래요? 알았어요"


다섯살 말주변만 돼도 '전 상관없으니  너 알아서 하세요'

했을법하게 무심한 반응이었다.


알았어요? 알았어요?

감히 알았어요  라고?


뒷 골 땡긴다는게 이럴때 하는 말임을 네 살 짜리한테, 

그것도 내 뼈와 살을 갈다시피 키운 녀석에게 배우게 될  줄이야.


본전 생각이 날법도 한 순간이었지만 내가 사람이 좋다보니 그냥 녀석을 위해 바친 살에는 미련을 두지 않기로 하고 갈아버린 내 뼈는 반드시 돌려 받으리라는 각오를 다지며

미남이 손에 끌려 모래 놀이터가 있는 아파트를 향해 걸었다.



이웃 아파트 놀이터에서 해 질 녘까지 놀다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오르막 길을 오르다가 미남이가 들고 있던 모래놀이 하던 장난감 한 개를 손에서 놓쳤는데 데구르르르 아래로 굴러갔다ㆍ


마침 뒤에서 산책 중이던 할머니 한 분이 장난감을 주워서 미남이에게 건네주셨다ㆍ

 

장난감을 받아 들고 할머니께 깍듯한 인사를 하더니 다급하게 날 불렀다.


" 할머니 할머니!, 그럼 미남이 돌보러 이제 저 할머니가 오는 거예요?"


한바탕 웃다가 신호등을 건너는데 착한 할머니가 벌써 저만치 앞서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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