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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물젤리 Feb 23. 2023

스무고개 놀이-엉덩이 아래 있는건?

네살 미남이

깊어진 가을, 어느새 해가 많이 짧아졌다.

녀석의 귀가 시그널인 놀이터 가로등 켜지는 시간이 빨라졌다는 뜻이다.

목욕을 끝내고도 집에서 둘이 놀수 있는 얼마쯤의 시간이 확보된 것이다.


요즘 미남이는 낱말카드 놀이에 빠져있다ㆍ


보통 카드는 한면에는 그림 한면에는 글자로 되어있는데 미남이 카드는 한면에 글자로만 되어있다.

한글 공부용 카드인지는 알수 없으나 미남이는 글자만 따라서 읽어보라면 입이 아파지는 지병이 있어 글자공부는 포기하고 우린 놀이로만 이용을 한다.


카드로 스무고개를 시작했다.

미남이가 카드 한 장을 골라주면 내가 문제를 낸다.


"이건 꽃을 좋아합니다"

"꽃나무"

"땡!!!!   이건 아주 무섭답니다"

"호랑이?"

"땡!!?  호랑이가 과연 꽃을 좋아할까요? 꽃을 좋아하고  무서운데 날개가 있고 침도 있어요,,

"벌"

"딩동댕 ~~~"


또 한장의 카드를 건네준다.

"이건 아아아아~~~~주 예뻐요"

""안 미남이요!!!!!!"

대답이 아주 우렁차다.


버튼 누르자마자 툭 떨어지는 음료 자판기처럼

문제내기 무섭게 녀석의 입에서 답이 튀어나왔다ㆍ


카드에 적힌 단어는 노을이었다.


웃음이 터져서 한참을 웃었더니 왜 웃냐고 <예쁜> 미남이가 물었다ㆍ

미남이가  너무 예뻐서 웃는다고 했더니 할머니는 내가 왜  예쁘냐고 묻는다.

미남이는 원래 너무 너무 예쁜 아이라고 했다ㆍ


글자도 모르는 주제에 다음 카드를 고르느라 이카드 저카드 뒤지면서

"그래요?"

무심하게 별거 아니란듯 대답했다.

녀석의 답을 풀이하면 <새삼스럽기는 당연한 일에 웬 호들갑> 이란 뜻이다ㆍ


미남이에게 그말을 너무 남발을 했다.

미남이가 두 번 고민없이 안 미남을 외친건 순전히 내  탓이었다ㆍ아니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ㆍ


아무리 그렇다고한들 휴대전화에 담은 본인 영상이랑 사진을 수시로 보는 애가 안 미남을 그렇게 당당하게 외쳤다고?


집으로 오는 길, 이 말을 전해들은 남편은

"맞네 진짜 맞어, 진짜 미남이처럼 예쁜 애는 없어"

이렇게 나와 공범임이 드러났다ㆍ


큰 딸은

"정말 그랬다고? 와 진짜 뻔뻔한 애다"

진짜 어이없네  어이없어를 연발했고


전화로 전해 들은 작은 딸은

"아니 어디서 그런 말도 안되는 자신감이 나왔대?

  우와 진짜 이건 말도 안돼,

  우리가 애를 그렇게 만들었네 만들었어"

탄식을 하며 우리 가족 모두가 공범임을 인증했고

난 앞으로 애 듣는데 정말 말조심을 해야 겠다는 귀한 교훈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엄마 쪽 사람들은  아빠 닮았나 보네 하고

아빠네쪽 사람들은 엄마 닮았나 보다 하고

양쪽을 다아는 지인들은 누구 닮았냐 물어보는 아이다ㆍ


미남이 엄마는 '요즘 많이 이뻐지지 않았냐' 며 은근 듣고 싶은 답을 유도하는데 본인조차도 질문앞에 <그래도> 라는 말을 붙인걸 보면 대충 답이 나온다.


사진 보여 달라고 보채던 내 친구들은 사진을 보고 짧게 "귀엽네" 한마디씩 하고 다른말로 돌린다.

"예쁘지?" 하면 "귀엽다고오"

"아니 예쁘냐고 묻잖아"

"귀엽다고 했잖아아~~~"


뒤에 다른 말을 할지언정,

내가 고구마 자루 같은 옷을 입고 나가도 예쁘다고 해주고, 키 작은 친구에게는 실제보다 키가 커보여서 키높이 신발 안신어도 된다며 늘 기분좋게 말해주는 재주를 가진 친구도 말없이 휴대폰을 만지작대고 있다가 꼭 이렇게 마무리한다.


"근데 미남이 진짜 귀여워"



몇개의 카드를 더 주고 받았고


"이건 엉덩이 아래 있는건데 뭘까요?"

"고추"

'에이 내 나이가 몇살인데 이정정도 모를까봐 '하는 표정으로 다음 카드를 고르고 있었다.


"아 그렇구나 그거 말고 또 있는데 뭘까요?"

"없는데요? 잠깐만요 뭐가 있는지 봐보고요"


두 손으로 내복 바지를 낑낑대며 내리고 아래를 살피더니

"아아? 무릎이요"


발이라는 오답이 나오고 종아리가 나오고 발가락이 나오고 발톱이 나왔다.

이러다가는 발톱의 때까지 나올 판이었다.


이쯤되면 정답을 입에다 넣어줘야 할 때다.


"팔 말고 뭐지?"

"손이요!!!!"


"미남이는 손이 엉덩이 아래 있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보세요 할머니?"하며 팔을 아래로 쭉 폈다. 그리고는 뭔가 부족하다 싶은지 왼쪽 허리를 굽혀서 한쪽팔을 최대한 아래로 내리더니

"보세요 할머니, 이 손이 엉덩이 아래에 있잖아요?"


뻔히 눈 앞에 있는것도 때로 보이지 않을때가 있다.

'다리'를 찾지 못한 미남이는 답을 찾겠다고 저렇게 용을 쓰고 있었다.


난 요즘 미남이가 빠져있는 병원놀이 세차장놀이를 제치고 이 놀이를 가장 좋아한다.


카드 상자를 찾아들면 미남이는 앞장서서 방으로 들어간다.


"할머니는 침대에 누워요"


카드 놀이를 좋아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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