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염 환자 미남이가 코를 킁킁대는가 싶더니 여지없이 콧물이 시작됐다.
병원 갈 준비를 하는데 미남이가 냉장고 간식 바구니에서 의사선생님 드린다며 아끼는 초콜릿 한 개를 꺼내 호주머니에 넣었다.
비염은 있어도 독한 감기 한번 앓지 않는 미남이다 보니
굳이 놀이터 엄마들이 추천하는 소문난 병원이나 규모 있는 큰 병원을 가지 않고 아기 때부터 집 근처 동네 병원을 다니고 있다.
그 병원 이른이 넘으신 의사 선생님은 아이가 인사를 해도 쌩~~~ 무시하는 무뚝뚝 대왕이시며 심한 까칠남이시다.
그래서인지 병원은 늘 한산하다.
미남이 잦은 콧물이 여름은 어린이집에서 종일 트는 에어컨 때문이며 봄철 알레르기나 가을 겨울철 누런 코는 밖에서 노는 탓이라며 약 처방전과 밖에서 놀지 말라는 처방을 늘 함께 주신다.
한 번은 미남이가 큰소리로 인사를 하고 의자에 앉았는데
미남이 진료카드만 들여다보고 계셨다.
착실한 이 녀석이 또 인사를 해도
묵묵부답.......
"원장님 미남이가 인사하는데요"
간호사 말을 듣고서야
"그래, 아 해봐라"
진료를 마치고 밖에서 놀지 말라는 처방을 받은 미남이가
또 인사를 해도 여전히 답이 없으시다.
"할머니, 선생님은 인사를 해도 왜 아무 말도 안 해요?"
의사 선생님 대신 무안함이 왜 내몫인가
재빨리 녀석의 등을 밀어 진료실을 나왔다.
다시 병원을 간 날,
까칠 선생님께서 무슨 일인지 아이를 보고 먼저 말을 걸어 주셨다.
"미남이는 좋겠다. 할머니가 많아서"
"저는 할머니도 많고 가족이 너무 많아서 셀 수도 없어요"
미남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에 아빠 위로만 고모가 다섯 분이라 고모부에 집집마다 사촌들까지 있으니 전혀 부풀리지 않은 답이다.
게다가 외할머니네랑 외삼촌이랑 우리 네 식구까지 가족이라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 미남이는 좋겠다"
"잘 때 기침 두 번 했고요 어린이 집 있을 때 코가 조금 나왔어요"
안 그래도 말 많은 미남이는 멍석이 깔렸다 싶은지 묻지도 않는 증상까지 읊어댔다.
"너는 잘 때도 기침하는 걸 세면서 자냐?"
"네, 저는 잘 때도 다 셀 수 있어요".
종종 미남이 엄마에게 미남이는 똑똑하니 책을 많이 읽어주라고 육아조언을 해주셨다던 선생님은
'얘는 뭐가 돼도 될 녀석'이라는 듣기 좋은 말씀도 해주셨다.
그런 분이 아니신데
참으로 이상한 날이었다.
그리고 한 참 지나 뜬금없는 중이염으로 세 번째 진료를 받으러 갔다.
"이제 코도 안 나오고 귀도 안 아파요"
의자에 앉으며 다 나은 걸 확신하는지 녀석은 목소리 톤을 잔뜩 올렸다.
코와 귀를 보시고는
"좋아져서 오늘 약 없어요"
미남이 손을 잡으려는데 의자에서 내려오려던 녀석이 양 손등을 쭉 펴서 의사 선생님께 내밀더니
"얘들도 치료해 주세요"
한 손에는 피카추 스티커가 한 손에는 다른 만화 캐릭터 스티커가 붙여져 있었다.
",,,,,,,,,,,,,,,,,,,,,,,,,"
"얘들도 아파요, 치료해 주세요"
",,,,,,,,,,,,,,,,,,,,,,,,,"
이상한 애라는 듯 미남이를 힐긋 쳐다보시더니 이내 진료기록카드를 적으셨다.
동심은 전혀 살펴주지 않으시는 피지컬 전문 의사 선생님이시다.
그리고 비염으로 초콜릿을 챙겨 병원에 간 날, 의자에 앉자마자 미남이가 증상을 읊었다.
아이말을 뭉툭 잘라내고 나에게 다른 증상 없냐고 물으시고 코를 뽑고 목상태를 한 번 체크하시더니 늘 하시는 말씀으로 밖에서 놀지 말라며 진료기록을 적고 계셨다.
미남이가 챙겨간 초콜릿을 내밀었다.
"션섕님 이거 드세요"
......, (처방전 작성 중)
"초콜릿 맛있는 거예요"
책상 위에 살며시 초콜릿을 올려두었다.
.....,,,,,,
처방전을 받으며 보다 못한 내가 끼어들었다
"원장님 미남이가 아끼는 초콜릿인데 집에서부터 원장님 드린다고 챙겨 왔어요"
"너 먹어"
"맛있어요 헤헤"
"난 초콜릿 싫어한다 너 먹어"
풀 죽은 미남이는 착상 위에 손을 뻗어 겁먹은 고양이처럼 살며시 초콜릿을 집어 들었다.
꺾이지 않는 친화력 우등생 미남이와
동심 테러리스트 의사 선생님.
친구들과 수다중에 늘 등장하는 말
우리 부부는 안맞어 안맞어
그래서 부부를 로또라고 하는데
미남이와 의사 선생님도 영 안맞는다.
최근에 의사 선생님은 둘 관계가 로또라는걸 다시한번 증명해 주셨다.
일년에 몇번 안가던 병원을
중이염 재발로 요즘 진료받는 횟수가 잦아졌는데
그동안 의사선생님 낮가림을 하셨던걸까.
자주 만나니 종종 치료외 다른 말씀도 하시곤 한다.
미남이 똑똑하다는 말씀.
이 나이에 이렇게 말하는 아이가 없다고 하시고
뭐가 돼도 될녀석 이라며
나더러 미남이 말하는것 좀 보라고도 하신다.
네네. 그 말재주로 제 뒤통수 수차례 가격당하고 있습니다요.
그날은 진료카드를 적으시며 말씀하셨다.
"미남이는 똑똑하니까 다음에 의사선샘님 되거라"
의자에서 내려오던 미남이 너무 놀라 눈이 동그래진다.
"싫어요. 전 중장비차 기사님 할거예요"
혼잣말인지 미남이 들으라는 말씀인지 조용히 중얼거리신다.
"철들면서 꿈은 자꾸 바뀌니까 뭐"
일평생 변함없는 간절한 꿈이 있는데
호랑이보다 곶감보다 더 무서운 말을 듣고
병원문을 나서며
"의사선생님은 내마음도 몰라주고.....,
왜 나한테 의사선생님 되라고 하는 거예요?"
"의사 선생님은 미남이가 다른 꿈이 있는지 모르셔서 그러셨던거야, 높은 건물 짓는 일만큼 아픈 사람 치료해 주는 것도 아주 대단한 일이거든 "
'너랑 의사선생님은 안맞아 안맞아'
실은 이 대답을 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