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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물젤리 Jul 21. 2023

하필 미남이 여행 전날에.....,

여섯 살 미남이

미남이는 내일 제주 여행을 떠난다.

코로나로 계속 미루다 마침 미남이 엄마 회사 숙소가 당첨돼

오래간만에 떠나는 여행이다.

두 살 적 다녀온 일은 이미 미남이 기억에 없으니 어쩌면 이번이 미남이 첫 제주 여행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미남이는 처음은 아니지만 첫 비행기를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다.


목요일 여행을 앞두고 하필 월요일  아침부터 목이 아프다고 했다.

진료를 받고 처방받은 약을 먹으며 제주 여행을 위해

다니는 합기도 학원쉬었다.

그런데 차도는 없고 지난밤엔 기침까지 했단다.


하루 앞두고 취소도 어렵고 난감한 상황이라 병원에 다녀와

어린이 집까지 빠지고 푹 쉬게 하기로 했다.


아침 일찍 병원 진료를 갔다. 

평소처럼 의사 선생님은 어린이 집에서 종일 트는 에어컨

때문에 낫지 않는 거라며  네 가지나 약을 처방해 주셨다.

"에어컨 바람 쐐지 마세요"

어린이 집을 안 보낼 수도 없고 집에서도 틀고사는 데

한여름에 대체 어쩌라고요.


제주 가는 걸 무슨 나로호 타고 우주 여행하는 것처럼

대단한 일인 줄 아는 미남이다.

어린이 집 선생님께 놀이터 친구 엄마들에게 사방팔방 자랑하고 다녔다. 

그것도 성에 안 찼던지 진료실 의자에서 일어나며 그 무뚝뚝한 의사 선생님께  자랑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픈데 난 모르겠다. 그건 너희 가족이 알아서 해라""

역시 무뚝뚝 대왕 선생님이시다.


집에 오자마자 낮잠 꼭 자야 하냐며 묻는다.

엄마가 출근하면서 푹 쉬어야 빨리 나으니 낮잠도 꼭 자라고 타일렀기 때문이다.

잠을 싫어하는 미남이에게 낮잠을 자야 한다는 말이 꽤나

부담이었나 보다.

그냥 눈뜨고 자면 안 되냐고 해서 그렇게 해도 된다고 쿨하게

대답했다.

남한테 없는 무슨 특별한 노하우라도  있는 척하더니 역시

뻥이었다.

낮잠  재우는 건 실패했다.



원체 몸에 열이 많은 미남이는 한겨울에도 얇은 내복에

홑이불을 덮는다.

에어컨 바람이 해롭다는 말을 듣고도 흘려듣던 미남이가

이 더위에 에어컨을 틀지 못하게 했다.

감기가 심해지면 제주 여행이 위태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극한직업 팬이 된 미남이가 티브이로 유튜브를 보는 중이었다.

산 속에서 벌목작업 하는 방송 중인데 자기는 절대 벌목하는 일은 하지 않겠단다.

저런 일은 너무 위험하니까 중장비차 기사님 할 거라는데

중장비차 기사님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한가지 더 늘었다.

변치 않는 기승전 중장비차 기사님의 꿈이다.


선풍기 바람으로 더위를 버티며

삐딱하게 소파에 기대 티브이 보는 미남이가 불편해 보였다.

1인용 의자를 좋아하는 미남이에게 기대기 좋은 쿠션을

주며 의자에서 편하게 보라고 했다.


"할머니, 지금 나 잠자게 만들라고 그러는 거죠?"


그,그, 그런 의도가 정말 아닌데

제대로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그리고 한참 후,


""할머니 설거지 하고 있잖아, 좀 기다리라고!!!""


호통 소리는 아까 뒤통수 맞은 거에 대한 유치한 복수가 아니다.


부쩍 잔병치레가 많아져 식탁에 약봉지가 사라질 날이

없는 요즘이다.


그래서 잘 먹이고 싶은 마음에 좋아하는 샌드위치를 만들어주고 고등어구이를 식판에 올려도 입맛이 없는지 수저를 들면 늘 깨작거린다.

그러면서 군것질 입맛은 여전해 간식통에만 관심을 주니 내가 열불이 날 때가 많다.


오늘도 병원에 다녀와 찐계란도 샌드위치도 그렇게나

좋아하는 토마토 주스도 마다하고 젤리타령을 해대니

속이 부글부글 끓는 걸 겨우 참는 중이었다.


유튜브를 틀어주는데 벌써 수십 번씩 봤던 것들이다.

 잠깐 보다가 재미없다며 계속 다른 거 틀어달라는 통에 그것

때문에도 짜증이 스멀스멀 오르던 참이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또 다른 걸 찾아

틀어 달란다.

조금 기다리라고 했는데 못 들었는지 또 재촉을 했다.


"할머니 설거지 하고 있잖아, 좀 기다리라고!!!"


이것저것 걱정스럽고 참았던 것들이 순간 나도 모르게 폭발을 했다.


아차 하는 순간은 이미 늦은 때이다.


조용히 이모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 미남이를 일부러

못 본 체 한다.

미남이는 우는 걸 들키기 싫어하는 아이다.

굳이 보지 않아도  침대에 앉아 눈물을 훔치고 있을 테니

그냥 잠시 모른 체 하기로 한다.

이미 저지른 일은 일이고 그것만이라도 지켜주고 싶다.


장마철  세차게 쏟아지던 비가 잠시 그치고 거짓말처럼

말간 하늘이 보일 때가 있다.

설거지를 마치고 고무장갑을 툴툴 털어 걸고

잠시 반짝하는 날씨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시침 뚝 뗀다.


"어? 미남아 어디 갔어?"

이리저리 찾는 척을 한다.


살며시 문을 열고 나온다.

"나 이모방에서 쉬고 있었는데?"

눈물샘 단속을 마친 미남이도 역시 시침을 떼고 대답한다.

사람 쿵짝 찰지다.


집에서 챙겨 온  숨은 그림 찾기 책을 열어 누가 많이 찾나

게임을 하고 심심풀이로 상가 마트를 다녀왔다.

먹고 싶은 두 가지를 고르랬더니 어린이 과자 진열대 앞에 여섯 살, 고민이 너무 깊다.

난 정육코너부터 주류 매대까지 마트 두 바퀴를 더 돌았다.

옆에 있으면 쫓기듯 고를까 싶어 나름 배려였다.

계산대에 올려둔 조그마한 껌 두 통에 웃음이 났다.

고작 껌 두통 고르려고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애가 무안해하지 않을 즈음

큰소리 내서 미안하다고 꼭 사과해야지 생각했었는데

그만 깜빡하고 헤어졌다.



엄마 차에 탄 미남이는 창문을 내리고 할머니 사랑해요

머리 위에 하트를 오늘따라 무차별 난사를 해댔다.



밤늦은 시간이 되니

사과 없이 보낸 일이 가슴에 무겁게  얹힌다.

미남이가 탄 차가 코너를 돌아 보이지 않을 때까지 

창밖으로 한참을 흔들던

녀석의 작은 손이 자꾸 눈에 어린다.


크리스마스만큼이나 미남이가 잔뜩 기대하는 여행인데

좀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감기도 걱정이고

장맛비를 몰고 오려는지

바람 소리도 거칠다.


잠드는 시간이 오늘은 좀 늦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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