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남이는 엄청 활동적인 녀석이다.
걷는 걸 좋아하고 자전거도 킥보드도 또래에 비해 꽤 수준급
이고 무엇보다 집 밖에서 노는 게 진심인 아이다.
지칠 만큼 열심히 놀고(실제로 지친 적은 없지만) 친구도 아주 좋아한다.
숫기가 있어 모르는 사람한테 먼저 다가가는 말 거는 일에도
거리낌이 없다. 궁금한 것도 많으니 오지랖도 넓다.
이런 성향이라면 마음도 여물고 단단해 언제나 씩씩할 거라 생각하기 쉬운데 그게 꼭 그렇지가 않다.
우리 미남이는 더욱 그렇지가 않다.
비 온 뒤 산책길에 지렁이 새끼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궁금해하는 미남이에게 땅속이 젖어서 따뜻한 곳 찾아
나왔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순 엉터리 답을 했다.
여섯 살 왜 왜 병 환자에겐 백과사전도 못 당한다.
그리고 백과사전에도 없는 질문이 절반이다.
그래서 오늘 같이 순 엉터리 답을 하면서도 이 대답정도면 됐지, 이것도 어디냐 내 순발력이나 되니까,
로 오답에 대한 위로를 삼는다.
"불쌍해요"
시무룩하다.
"그러게"
두 눈을 꿈뻑꿈뻑하면서 마음보다 먼저 터진 눈물을 밀어 넣으려 애쓴다.
눈물을 감추고 싶어 하는 미남이 나한테 또 들켰다.
드라마를 보는데 엄마도 다음에 죽는 거냐고 물었다.
나이가 아주 많으면 누구나 죽는다고 했다.
금세 또 두 눈을 끔뻑거린다.
뱉어낸 말처럼 이미 맺힌 눈물도 다시 담을 곳이 없다.
녀석은 눈물 자판기다.
누굴 닮았는지 모르겠다.
엄마를 봐도 아빠를 봐도 이런 여린 감성은 아닌데 말이다.
이틀 전, 늦은 시간에 미남이 동영상이 한 개 도착했다.
가운데 재생 표시가 된 영상에는 얇은 여름 내복을 입고
소파에 비스듬히 기댄 미남이가 보였다.
녀석이 보이자 비 젖은 낙엽처럼 아래로 축 처져있던 내 입꼬리가 순식간에 위쪽으로 방향을 튼다.
꾹, 재생을 눌렀다.
""미남아, 미남이는 엄마가 내일 자고 일어났는데 바퀴벌레가 되어 있으면 어떻게 할 거야?""
"왜?"
"아니, 만약에 그럼 어떡할 거냐고"
"그래도 엄마랑 같이 놀아야지"
"사람들이 바퀴벌레라고 엄마를 잡으려고 할 텐데?"
"엄마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만 있어야지"
이미 울먹울먹 입꼬리가 씰룩거리고 콧잔등이 빨개진다.
눈물을 들키기 싫어하는 미남이가 얼굴을 숙이고 엄마품으로 쏙 파고든다.
'어디서 이딴 걸 보고 와서 애를 울리고 난리냐'고 영상 끝나기 무섭게 다다다다 카톡을 보냈다.
'가뜩이나 마음 여린 애한테.....,'
한 줄 더 덧댄다.
<**을 하고 있네>도 적으려다 말 줄임표 안에 구겨 넣는다.
어제 오후,
미남이 목욕 중이었다.
이마에 캡을 씌우고 물질 문질 머리를 감기고 있었다.
거품 장난을 좋아하는 아이라 머리 감을 때 나는 거품을 쭉
짜내서 미남이에게 건네니 두 손바닥을 펴서 거품을 받는다.
후후 불면서 거품 장난을 하는 아이를 보다가 전날 봤던 바퀴벌레 영상이 생각났다.
갑자기 미남이 엄마와 묘한 경쟁심이 발동을 했다.
나도 적어도 그 정도의 반응을 기대해 본다.
"미남아, 할머니가 갑자기 뱀으로 변하면 미남이는 어떻게
할 거야?"
"당연히 할머니랑 놀아야죠"
불과 하루 전 이미 마딱트렸던 상황이라
전혀 긴장한 표정 없이 손바닥 비누질에만 눈길이 가 있다.
강펀치를 날렸다.
"엄마 아빠가 할머니가 뱀으로 변하면 무섭다고 미남이랑
못 놀게 하겠지?"
비누놀이로 문질거리던 손이 느려지는가 싶더니
내 허벅지에 얼굴을 대면서 두 팔로 꼭 껴안는다.
"어, 어, 비누 할머니 바지에 다 묻네"
아이를 밀쳐보니 눈이랑 콧잔등이 벌써 빨갛다.
눈물을 들킨 미남이는 울었냐고 묻는 나에게
눈을 힘껏 감았다 뜨더니
"아니요 안 울었어요" 굵은 침을 꿀꺽 삼킨다.
"그렇구나, 머리 감아서 그런 건데 할머니는 우리 미남이가
우는 줄 알았네"
모른 척해준다.
역시 우리 미남이 할머니 사랑은 찐찐찐찐 찐이야
빵빵한 풍선처럼 마음이 부풀었다.
"그래도 할머니뱀이랑 놀아준다고 해서 고마워"
"그런데 사람이 뱀으로는 절대로 바뀔수 없으니까
우리 미남이 걱정 안해도 돼 "
퇴근해 온 미남이 엄마에게 뱀 이야기를 해주었다.
미남이가 눈이 벌겋도록 울먹거렸다고 잔뜩 거들먹 거리면서 말이다.
"이모, 그래서 좋았어?"
"말이라고"
지금 생각해보니
애한테
아, 진짜 젠장 **할 짓을 했다.
늦은 밤
창문을 때리는 바람이 수상하다.
많은 비를 데려올것 같다.
내일은 얼마전 새로 산 노란색 비옷을 챙겨 마중가야 겠다.
물에 젖은 미끄럼틀은 내려오는 속도가 몇 배나 더 빠르다.
"아아악~~~!!!!"
웃음으로 범벅이 될 녀석의 고함 소리가 벌써 귀를 찢는다.
창을 때리는 바람 소리도 잡아먹을 기세다.
함께 쓴 까만 우산 속에서
비는 왜 예쁜 소리가 나냐고 묻던 녀석이 보고 싶다.
날이 빨리 밝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