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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물젤리 Aug 20. 2023

미남이 사고 친 날-친구 손등에 이빨 자국

다섯 살 미남이

왁자지껄한 놀이터.

오후 해가 서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잘 놀던 미남이와 예은이, 미끄럼틀 아래서 두 녀석이 속닥속닥 귓속말을 주고받는다.

다들 신나게 노느라 주변에 들을 사람도 없는데 서로 입과 귀가 바짝 맞닿았다.

미남이 꼬리처럼 따라붙는 내 시선이 뭔가 수상함을 감지한다. 무슨 작당모의라도 하나보다. 짜식들 그래봐야 내 손바닥 안이다.


둘이 쪼르르르 내쪽으로 뛰어온다.

"할머니, 미남이 집에 가서 놀고 싶어요"

 눈에 희고 뽀얀 피부가 예쁜 예은이가 선빵을 날린다.

"할머니, 저 예은이랑 집에 가서 놀게요 네에?"

미남이도 말을 보탠다.

10초도 안지나서 온 놀이터가 들리도록 쩌렁쩌 말할걸 뭘 수고스럽게 귓속말을 주고받았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방송을 해라.

"저도요, 저도요"

동네방네 큰소리로 떠들어댔으니 아이들이 내쪽으로 모여든다. 저 아이들 막을 간이 없다.


놀이터에 있던 아이들의 엄마 아빠랑은  여섯 시에 만나기로 하고  미남이 가방을 들었다.

쪼르르르 달려 아이들은 나보다 먼저 현관입구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는데  못보던 새침해 보이는 여자아이 한 명도 따라붙었다.

그 아이는 우리보다 두세 걸음 뒤에 떨어져  있었고 아이를 쫓아 몇 걸음 뒤에서 주춤거리는 아이 아빠도 있다.

아이 아빠에게 주소를 알려주고 같이 놀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괜찮으면 데려가겠다고 하니 고마워한다.


다섯 살짜리 동갑내기가 떼로 탄 엘리베이터는 드륵 드르륵 시멘트를 뚫는 지하철 공사장보다 시끄럽다.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한꺼번에 우르르 밀치면서 내리더니 서로 집에 먼저 들어가겠다고 문 앞에서도 아우성이다.

검지를 입에 대고 조용히 하자는 내 말 따위는 바람에 날리는 먼지보다 존재감이 없다.


집에 들어서자 마구잡이로 신발을 벗고 또 뛴다.

거실에 있는 장난감을 한바탕 뒤집더니 미남이방에 잘 정리된 장난감들을 모두 꺼내 방까지 금방 초토화를 만들었다.


아이들과 바로 섞이지 못하고 쭈뻤거리는 여자 아이, 아직 낯선가 보다.

장난감을 챙겨주고 다정하게 말을 걸어 주었다.

여자 아이가 방으로 들어가자 미남이가 나에게 다가왔다.


"할머니는 미남이보다 저 친구가 더 좋아요?"


얼마전 놀이터에서 몸이 불편해 보이는 할머니가 돌보는 여자아이 그네를 밀어 줬을때도 같은 질문을 했다.


"미남이랑 다른 친구들은 친해서 잘 노는데 저 친구는 처음 만나서 낯서니까 할머니가 도와주는 거야. 그리고 미남이 친구예쁜데 할머니는 미남이가 훠얼씬 예쁘고 좋아"


전날 엄마가 좋아 할머니가 좋아?

내가 물었을때 녀석은 몇번을 둘다요 라고 대답했다.

녀석은 답정녀의 질문을  빤하게 눈치까고 있으면서 지가 지조를 지키는 춘향이도 아니면서 내가 듣고 싶은 대답을 끝내 해주지 않았다.

괘씸한 마음에 나도 둘다 똑같이 좋다고 대답해서 답정남 약을 좀 살살 올려줄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어린이집 마트 체험가서  과자 먹는걸 포기하고 내가 좋아하는 참 크래커 사왔던 의리가 생각나 봐주기로 했다.


나의 답정남님, 대답이 흡족한지 들고 있던 레미콘트럭에 달린 둥근 통을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리면서 다시 놀이에 빠졌다.


잠시동안이라도 아이들을 맡으면 폭탄 맞은 집보다 혹시 다칠까 더 신경이 쓰인다.

거실과 장난감 방이 한눈에 보이는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아 거실로 방으로 부지런히 살피고 있었다.

거실에는 미남이와 예은이가 놀고 있었고 방에서는 세명의 아이들이 인디언 놀이 텐트에 서로 먼저 들어가겠다며 소란스럽다.


귤이랑 토마토 간식을 냈다.

입 짧은 한 아이는 간식에 관심이 없다.

작은 테이블에 빙 둘러앉은 아이들은 친구 먹는 것만 보고도 웃음이 지나보다.

깔깔깔 해맑은 웃음 소리. 활짝 열린 입술. 절반쯤 감긴 눈웃음 앞에서 살캉한 봄바람이 스친듯 마음이 환해진다.


굳이 의자를 끌어다 앉은 미남이.집주인 티를 내고 싶었던걸까



"그건 안된다고오!!!"

간식 접시를 치우는데 거실에서 큰소리가 났다.

조립해 둔 장난감을 만지려고 하자 미남이가 팔로 예은이를 가로막았다.

"장난감은 친구랑 같이 가지고 노는 거야"

예은이도 지지 않았다.

팽팽하게 몇 번의 실랑이가 오갔다.

예은이가 가로막은 미남이 팔 사이로 손을 넣어 장난감을 만지려는 순간, 갑자기 미남이가 예은이 손을 잡아끌더니 입을 예은이 손등에 갔다 댔다.

"미남아!!!!!"

내 목소리에 놀란 미남이가 입을 바로 뗐고 괜찮냐고 물었더니 예은이는 무덤덤하게 "네" 대답한다.

다행이다. 깨물지는 않았나보다.


몸으로 노는 걸 좋아하고 행동이 빠릿빠릿한 말 많은 미남이는 겁이 많고 소심하다.

평소에 친구를 먼저 때리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한 적이 없는 미남이라 불러서 조용히 타일렀더니 저도 놀랐던지 눈물을 찔끔거렸다.


두 아이는 금세 잊고 주거니 받거니 잘 놀고 있었다.

머리를 맞대고 조각 퍼즐을 맞추다가 예은이가 나에게 도와달라며 퍼즐 한 조각을 가져왔다.

나도 같이 앉아 퍼즐 자리를 찾고 있는데

아뿔싸!!!

예은이 손등에 두줄로 둥그런 이빨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유별나게 하얀 피부 탓이빨 자국이 선명하고 짙어 보였다.

깜짝 놀라  자세히 살펴보는데

이빨자국을 본 미남이가 놀라서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뒤늦게 깨문 자국을 예은이도 미남이가 울자 서럽게 따라 울기 시작했다.

눈물의 이중주다.

누가누가 더 슬픈가 내기라도 하는것같다.


울고 있는 두 아이를 달래고 예은이에게 아픈데  왜 참았냐고 물었더니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아까는 아프지 않았다고 했다.

울어서 눈과 코끝이 빨개진 미남이는  예은이 손등에 살며시 손을 얹고서 어쩔 줄 몰라 한참 동안이나 그대로 있었다.

예은이도 미남이 손을 뿌리치지 않고 가만 맡기고 있었다.


이 정도인데 아프지 않다고?

난 입으로 내 손등을 살짝 깨물어 봤다.

생각처럼 아프지는 않았고 생각보다 이빨자국은 선명했다.

예은이가 울지 않은 상황이 이해가 됐다.


조금 걱정을 덜게 된 나는 그 와중에

손을 맡기고 가만히 있는 예은이와

차마 손을 떼지 못하고 계속 상처를 만지고 있는 미남이.

 두 아이들이 어찌나 귀엽던지 휴대폰을 열어 사진을 찍었다.



잠시 후, 여섯 시가 됐고 물린 자국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아이들을 데려다주러 가는 길도 올 때처럼 소란스럽다.

예은이랑 미남이도 그새 손등 같은 건 까맣게 잊고 아파트 현관문이 열리자 막 어둠이 찾아온 놀이터를  향해 내달린다.


마중 나온 예은이 아빠에게 예은이 손등을 보여주니 그 정도는 저희 부부 신경도 안 쓴다며 쏘쿨하게 이해해 주신다.


노는 데는 밤낮이 없다.

어둑어둑한 놀이터에서 '조금만 더'가 입에 붙은 아이들은 결국 엄마들을 이겨먹고  놀이터를 한바탕 뒤집은 후에 집으로 들어갔다.



주말을 보내고 다시 놀이터다.

유치원 차가 도착하는 순서로 아이들이  놀이터에 차례로 모여든다.

미남이가 가장 먼저 도착을 하고 맨 마지막으로 예은이 차가 도착한다.

예은이 차가 도착하기 전 예은이 아빠가 동생을 아기띠에 메고 마중을 나왔있었다.



"할머니 할머니"

미끄럼틀 위에 있던 미남이가 내쪽으로 오더니 귀를 가까이 대라는 손짓을 한다.

또 무슨 말씀을 하려고 이러시나 귀를 미남이에게 바짝 댔다.

미남이는 누가 들을까 걱정인 듯 손으로 입을 가렸다.


"있잖아요오, 예은이 아빠한테 예은이 손 괜찮은지 물어보세요"

"알았어. 그럼 예은이 오면  미남이도 예은이한테 물어봐?"

나도 입을 미남이 귀에 바짝 대고 속삭였다.


미남이는 친구들이 탄 유치원 차가 보이면  폴짝폴짝 뛰어가 차문이 열리기도 전에 먼저 기다리는 녀석이다.

그날은 예은이가 놀이터까지 오기를 기다렸다 얌전히 걸어가더니 안 본 척 눈을 아래로 요렇게 내려 뜨고 몰래 손등을 살폈다. 

나만 보는 녀석의 행동. 너무 재밌다. 혼자보기가 아깝다.


"예은아 손 괜찮아?"

"응!!!"

아빠 닮아 예쁘게 생긴 예은이

성격도 아빠 닮아 쏘쿨한가 보다.


"우리 괴물놀이 할까?"

"좋아"

예은이는 미끄럼틀을 빙 돌아 벌써 저만치 뛰어가고 

시작도 안했는데 도망가는건 반칙이라며 미남이가 힘껏 따라붙는다.


이런 순간도 놓칠수 없다.

나는 또 휴대폰 카메라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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