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가 H에게 (2)

서론 (2)

by 흔들리는별

동성애. 살면서 몇 번이나 들어본 말일까? 솔직히 한국의 대중 대부분은 동성애에 별로 관심이 없을 것 같다. 그건 이따금 뉴스에서나 들어본 말이고, 어디서 동성애 축제가 열린다고 할 때 약간의 꺼림칙함을 느끼게 만드는 말일 뿐이고, 내 주변에는 찾아볼 수 없는, 이례적이고 이질적이고 이상한 단어다. 한국에선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만 아마 진지하게 이 문제에 대해 탐구하지 않을까 싶다. 혹은 종교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나도 영문학을 공부하기 때문에 젠더 문제에 대해 난생 처음으로 심사숙고하게 됐다. 그리고 새삼 깨닫게 되었다. 동성애 문제를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사람들은 고학력자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그런데 막상 동성애 문제가 야기하는 차별과 냉대와 학대를 감당하는 건 고학력자들만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아니, 오히려 그 반대인 사람들이 훨씬 더 많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자니 참 지독하게 불균형하다, 싶었다. 한쪽에서는 젠체하며 학력을 중시하고 수많은 책들을 독파한 걸 평생의 자랑으로 여기는 책벌레들이(그 수가 많지도 않다) 돋보기를 들이대며 굽은 어깨를 수그린 채 헤테로, 호모, 바이섹슈얼, 젠더, 페미니즘 기타 등등에 대해서 중얼중얼거리고 있다. 그런데 다른 쪽에서는 눈먼 주먹에 얻어맞고 쓰러진 멍투성이의 당사자들이 즐비하다. 한쪽은 거친 일 한 번 안 해본 고운 손이 존재하고, 다른 한 쪽엔 꼬집히고 멍들고 베인 손이 존재한다. 이건 동성애에 대한 대중적인 이해가 부족한 탓일까, 아니면 한국 특유의 고학력자 우선주의 탓일까? 아니, 그 전에…. 그 책벌레들의 소위 ‘깊이 있는’ 연구가 이런 불균형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긴 할까? 당장 결론을 내기엔 난감한 질문이다.


솔직히, 동성애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면 연구나 공부보다 차라리 웹툰이나 웹소설을 감상하는 게 더 빠르다고 생각한다. 요즘 나오는 웹툰들은 동성애자 캐릭터들도 드물지만 간혹 등장하며, 웹소설은 아예 BL이란 문구를 내걸고 동성애자들이 주인공 자리를 차지한 이야기를 쏟아낸다. 물론 웹소설은 동성애를 지나치게 이상화하고 환상주의적으로 다루는 경향이 있어서 그닥 추천하지 않는다. 하지만 웹툰은, 성인전용이 아닌 이상 그나마 현실 기반의 동성애자 캐릭터들을 다루는 작품들이 몇 개 있다. (많지는 않다.) 내가 동성애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것도 웹툰을 통해서였다. 다만 그건 정식 작품이 아니었다. 아무나 웹툰을 올릴 수 있는 무료 플랫폼에 올라간 누군가의 실험작이었고, 그나마도 완결이 안 된 상태로 작품이 내려갔다. 거기서 굉장히 인상 깊었던 대사 일부는 아직도 생각이 난다. (더 이상 볼 수 없는 작품이라 정확한 인용은 아니다.)


“이성애가 보고 배울 수 있는 거였으면 우리도 이성애자가 되었겠지. 이성애자인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는데.”


“사람들은 우리가 남자만 보면 무조건 성욕을 느낄 거라고 생각하더라고. 우리도 보는 눈이 있는데 말이야.”


이건 ‘동성애자’를 동성애자라는 카테고리로 한 데 싸잡아서 바라보는 게 아니라, 개별적인 ‘개인’으로 마주하는 말들이었다.

우린 동성애를 생각할 때, 동성애를 하는 사람들이 다 비슷비슷한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들을 한 사람, 한 인간, 한 개성으로 보지 않는다. 어째서인지 그들 모두를 하나의 상자에 쓸어담아서 탁! 하고 뚜껑을 닫아버리고 그 위에 큼직하게 쓰는 것이다. “호모”라고. 그리고 끝. 우리나라보다 젠더 연구가 발달한 미국의 학자들이 보면 뒤통수 잡고 쓰러질 만행이다. 미국 사람들은 호모와 헤테로 뿐만 아니라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렌스젠더, 거기에 유니섹슈얼과 무성애까지 다양하게 다루면서 범주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구분하기 위해 기를 쓴다. 솔직히 매미를 잡아다 해부해서 각 몸의 장기들을 섬세하게 파헤치고 일일히 이름을 붙인 곤충학자 파브르도 그만큼 예민하게 굴기 힘들다. 그리고 이 유난스러움이, 한국사람들로 하여금 동성애 문제라고 하면 진저리를 치고 뒤로 물러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인정해야 할 게, 미국에도 그 유난스러움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를 존중해달라!”라고 외치는 새로운 범주의 사람들이 날이면 날마다 쏟아져나오니까, 남녀노소 불문하고 이런 문제에 피로감을 느끼고 학을 뗀다. “존중해! 존중한다니까? 화 내지 마!”에서 “아! 다 지긋지긋해! 그냥 옛날처럼 편하게 살면 안 되냐? 어? 왜 이렇게 세상을 복잡하게 만들어!”라고 울컥 화를 내게 된 것이다. 안 그래도 피곤한 세상, 공부할 것도 많아지고 적응해야 할 것도 많은데, 늘 ‘정상’이라고 믿고 살아오던 것마저 그게 아니라고, 그걸 모르면 무지한 거라고 손가락질 받으니까 아무리 점잖은 사람이라도 발끈 화가 치솟는 것이다. 그리고 무지하다는 말을 죽기보다 더 싫어하는 사람이 바로 한국인 아니던가.


한국 사람들은 안 그래도 바쁘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대학원생 겸 학원 강사인데, 일요일 아침 9시부터 공부하러 오는 만 10살 꼬맹이들이 적게는 5명, 많을 때는 8명이나 된다. 이 꼬맹이들이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면 숨도 못 쉴 만큼 바빠지고, 회사에 들어가면 잠도 못 잘 만큼 바빠지고, 결혼하고 아이라도 생기면 죽을 만큼 바빠진다. 그 죽을 만큼 바쁜 어른들이 모여서 만든 게 한국 사회다. 이런 사람들한테 동성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라고, 사실 동성애는 다 같은 동성애가 아니라 그 안에서도 다양한 갈래와 범주가 있다고, 이걸 모르면 당신은 무지한 거라고 말한다 치자. 뺨이나 안 맞으면 다행일 것이다. 이렇듯 한국에서 동성애에 대한 대중적인 인식이 자리잡는다는 것은 근본부터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이 문제를 아예 생각하지 않을 순 없다. 그게 현실임을 인정하자. 세상은 점점 더 세분화되어가고 있고, 당장 내 자식이 내일 아침 “엄마, 나 사실 게이에요”라고 커밍아웃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나와 성(性)이 같은 내 친구, 내 직장동료, 혹은 거래처 직원이 나를 짝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도 안 하고 있다가 어느날 세상이 뒤집어지는 듯한 기분을 맛보는 것보단, 차라리 일찍 직면하고, 모른다고 이실직고하고, 한 번이라도 고민해보는 것이 만약을 위해서 훨씬 더 낫지 않을까? 그리고 어쩌면, 아주 만약이지만, 각박한 한국 사회에 치여 당장 내일이라도 삶에 작별을 고하려고 했던 성소수자가, 이 글을 읽고 조금 가슴이 트이는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르고 말이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는 걸 충분히 인정하고 있다. 내 글은 어떤 성소수자에게는 대답이 될지도 모르지만, 어떤 성소수자에게는 그저 화만 돋우는 불쏘시개일지도 모른다.)


나는 현재 학원강사이자 영문학을 공부하는 석사생이다. 그리고 장차 앞에서 말한 ‘어깨가 굽고, 안경을 쓰고, 돋보기를 들이대는’, ‘고운 손을 가진’ 고학력자 중 한 명이 되기 전에, 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가장 평범하고 / 가장 아는 게 적고 / 가장 경험이 없는 / 무지한 / 성년의 / 한국인”이 동성애 및 기타 등등 성소수자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냥 흘러가는 대로 기록해보려고 한다.


이 글이 뜨겁길 염원해본다. 이게 사람을 태우는 불이 될지, 혹은 사람의 마음을 데우는 온기가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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