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지하다 (3)
‘그 사이 어딘가’라는 말은 참 불분명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표현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차라리 모른다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뭉뚱그려서 말하는 게 더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무지개가 7가지 색깔로 이뤄졌다고 말하지만, 사실 색깔과 색깔 사이에는 수많은 스펙트럼이 있다. 그저 어린아이들에게 스펙트럼을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기 위해 7가지 구획을 나누어서 딱딱 끊어 정의를 내린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어디서부터 무지이고 어디서부터가 타인에 대한 배려인지 그 스펙트럼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이건 무지야”, “저건 배려야”라고 구획을 정해야 한다. 그런데 그건, 지금까지 대중과 성소수자들이 서로 소통하는 방식이었다. 한쪽에서는 무지라고 주장하는 것을 다른 한 쪽에서는 자존심 상해하고, 한쪽에서 배려라고 주장하는 것을 다른 한쪽에서는 공격이라고 받아들여왔다. 성(性)이라는 문제는 그토록 애매하고 안개처럼 뿌연 지대에 걸쳐져 있다. 그러니 그 누구보다 더 나을 것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 스펙트럼을 통째로 들고 와서 보여주는 것 뿐이다. 여기 스펙트럼이 있으니 모두 이걸 함께 응시하자고. 그럼 그 안에 7개가 아니라 수백, 수천 개의 색깔들이 반짝이고 있는 걸 볼 수 있을 거라고. 우린 그중 아무거나 하나만 골라잡고 서로를 침범하지 않으면서 한 스펙트럼 안에 공존할 수 있다고.
편을 고르는 것보다, 굳이 어느 편에 속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차라리 더 진실에 가까운 말이다.
그리고 그 어느 편에 속할 필요가 없다면, 싸울 필요 또한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