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지하다 (4)
그러니까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잘 모르긴 해도, 적어도 싸우려는 의사는 없다. 눈 먼 돌에 개구리가 맞아죽을 수 있다고 하지만, 대놓고 겨냥하는 돌과 눈 먼 돌 중 어느게 악의가 없는 편이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자명하다. 하지만 아무리 끈질기게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아 차라리 싸움을 감수하고서라도 당사자를 붙잡아 묻고 싶은 질문은 있다. 군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리고 대중목욕탕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솔직히 대한민국에서 군대와 대중목욕탕 이 두 가지만 없어져도 성소수자를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문제는 훨씬 쉬워지지 않을까 싶다. 군대와 대중목욕탕. 생각하면 할 수록, 성소수자가 이상하다기 보다는 이 제도들이 원초적으로 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군대란 무엇인가? 표면적으로 생각하면 국방을 위한 것이다. 군대가 없으면 국방도 없다. 국방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그 안에는 전쟁이 있고, 살육이 있다. 살육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잔인하고 끔찍한 것이다. 그러므로 군대는 꼭 필요한 것이지만, 근본적으로 잔인하고 끔찍하다.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 어딜 가든 군대에 가르치는 것은 딱 3가지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죽이는 법, 사람 죽이는 기계를 다루는 법, 그리고 복종하는 법이다. 그런 것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20대의 창창한 젊은이들을 강제로 들이고, 2년동안 정신 나갈 정도로 어질어질한 가스라이팅과 엄격한 규율로 닦아세운 다음, 거기에 익숙해지면 잘 했다고 포상을 준다. 이런 시스템은 솔직히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생각해보면 기묘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필요하다고 해서 꼭 그게 옳다고 할 이유는 없다. 군대는 필요하지만 옳지 않다. 마치, 감옥이나 사형제도가 필요는 하지만 옳은 것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혹은 관료제나 사회생활이 필요하긴 하지만, 현대인의 정신 건강을 갉아먹는 원인 중 하나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군대는, 성소수자의 진입을 거부하는 대표적인 제도 중 하나다. 성소수자들, 그중에서도 트랜스젠더들은 군 경력을 쌓고 싶어도 쌓을 수가 없다. 묘한 건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성소수자라고 밝힌다 한들 군대를 무조건 빼주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가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군대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해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군의관은 많지 않다. 되려 불법 군 면제를 시도한다고 처벌 받을 확률이 더 높다. 생식기를 아예 절단한 경우는 군 면제 사유가 된다고 하긴 하지만, 그 외엔 성 정체성 문제로 입대에 제한이 생기진 않는다. 그러면서 정작 군 생활 도중에 성 정체성이 밝혀지거나 성 전환 수술을 받으면 바로 퇴출이라는 것이 모순적이다. 하지만 감히 말하건대, “이해가 가는 모순”이긴 하다.
생각해보자. 군대의 역사란 얼마나 오래됐는가? 넓게 잡으면 구석기 시대 때도 서로 다른 무리 간에 돌덩이와 나무작대기를 들고 싸우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좁게 잡으면 우리나라 고조선 때부터 국방을 위한 군대는 있었으리라고 추정 가능하다. 하지만 성 정체성이란 개념이 생긴 건 겨우 100년도 안 됐다. 이성애가 아닌 다른 종류의 성 정체성이 사회적 인정을 받고 본격적으로 연구된 역사가 그토록 짧은데, 군대의 역사는 정확한 기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길다. 따라서 성 정체성 문제로 군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늙은 고목을 여린 떡잎으로 베어 넘어뜨리려는 시도나 다름 없다. 떡잎이 자라 나무가 되면, 그리고 늙은 고목이 뿌리가 썩어 부실해지면, 그럼 그때는 젊은 나무를 지렛대 삼아 늙은 고목을 쓰러뜨리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역사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고목은 고목이라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존경심을 자아낸다. 그 뿌리의 두께, 그간 인내해온 비바람의 강도, 그리고 땅 위로 드리우는 거대한 그림자는 나무가 아무리 가시투성이이고 못생겼다 한들 쉽게 무시할 수 없다. 그 거대한 존재감을 무시한다면 그건 눈뜬 장님일 것이다. 그러니 참아야 한다. 참으라고 말하고 싶다. 섣불리 저 무시무시한 고목을 적으로 간주하고 쓰러뜨리려 하다간 이제 겨우 난 떡잎이 찢어진다고 말리고 싶다. 그렇지만 동시에 저 고목의 그늘 아래에서 햇볕을 못 받고 죽어가는 새싹들을 생각하면, 하루빨리 고목이 무너져야 한다고 부르짖는 사람들의 심정도 이해가 된다. 늙은 고목은 아직 굳건하고, 떡잎은 연약하고, 고목에 대하여 울분을 터뜨리는 소리는 강렬하다. 이게 군대를 대하는 성소수자들의 상황이 아닐까 싶다. 따라서 내가 성소수자들에게 묻고 싶은, “군대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은 사실 다음과 같다 - “못된 고목 밑에서 여린 싹들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