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지하다 (2)
내 무지는 이따금 ‘동성애’와 ‘성소수자’를 동의어인 것마냥 혼용해서 쓴다는 사실에서 이미 드러났다. 나를 가르친 교수님들이 이 글을 읽으면 손바닥 맞을 일이다. 나도 논문을 쓰는 거였으면 두 단어를 좀 더 조심스럽게 사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현 주소가 딱 그렇다. 아직도 성소수자라는 말보단 동성애란 말이 더 자연스럽고, 동성애란 말보다는 호모가 더 쉽게 튀어나오는 사회다. 젠더라는 말은 여전히 낯설다. 그리고 난 그게 문제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문제를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내 무지가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하지만 알아야 한다. 이런 나에게 어떤 성소수자가 “왜 제대로 된 단어를 안 쓰는 거죠? 그게 얼마나 비윤리적인 행동인지 알아요?”라고 비난한다면, 나는 반성보다는 내가 공격 받았다는 억울함이 들 것이다. 그리고 그 억울함에서 한 발만 잘못 디디면 분노로 발전하는 건 너무나 쉽다. 나는 내가 그렇게 깎아지른 듯이 윤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도 못 느낀다. 따라서 이런 ‘사소한 것 때문에’ 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없길 바란다. 사실 이건 사소한 문제가 아니지만 - 나는 그렇게 배웠다 - 엄청 중요한 문제지만 - 나는 중요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 어쨌든 공격 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나 같은 사람에게 부디 비난조로 다가오지 말기를 부탁하는 바이다. 무지는 억울함으로 발전하기 쉽고, 억울함이 분노가 되는 것은 한순간이고, 분노가 차별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므로. 사실 대부분의 성소수자 차별은 다 무지에 대한 공격에서 시작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고 해서 성소수자들에게 차별의 시작이 그들에게 있다고 화살을 돌리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 입장에서 봤을 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공격 받으면 그 다음 단계는 분노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무지한 나라도 쓰기 참 애매하고 조심스러운 말이 있으니, 바로 ‘호모’다. 호모라는 말은 왜 조심스러울까? 그건 거기에 덕지덕지 묻은 차별의 시선 때문이다. 그 시선은 나 같은 무지한 자도 바로 알아챌 만큼 뚜렷하다. 대한민국에는 “음지”라고 부르는 문화콘텐츠가 있는데 (아마 다른 나라들에도 비슷한 게 있겠지만, 굳이 찾아본 적은 없다) 이런 문화콘텐츠에서 다루는 동성애자들, 흔히 ‘호모’라고 일컫는 자들은 성적 욕망이 뇌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집단으로 묘사된다. 보통 잘생긴 남자 - 호모들은 대부분 남자들이다 - 둘이서 서로 욕망하는 구도가 즐겨 등장하는데, 내 친구에게 들은 바로는 이게 여자들에게 있어서 야설이고 야동이라고 한다. 으레 야설이나 야동에 등장하는 남녀 커플은, 남자가 여자를 강압적으로 다뤄서 꼴보기 싫지만, 남남 커플은 서로 동등한 입장이라 한쪽이 다른 한쪽을 강압적으로 다뤄도 그냥 컨셉이란 느낌이 들어서 좋다고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꽤 흥미로운 해석이지만, 그게 현실의 성소수자들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들릴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그게 ‘호모’라는 단어에 묻은 짙은 성적 욕망(가히 짐승과도 같다)를 지워주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서 사람들은 보통 호모라는 말을 입밖으로 내뱉진 않는 듯하다. 최소한 나는 30년 넘게 살면서 내 귀로 누가 그 단어를 발음하는 걸 들은 적이 없다. 다만 인터넷상에서는 정말 차고 넘치게도 봤다. 타자로 치기 쉬워서일까? 확실히 ‘동성애’를 스마트폰 자판으로 치는 것보단 ‘호모’라고 쓰는 게 더 편할 거 같긴 하다. 특히 스마트폰이 뜨끈하게 달아오를 정도로 격렬한 키배(키보드 배틀)를 뜬다면 “성소수자”라고 꼬박꼬박 타자치는 사람들보다 “ㅎㅁ”라고 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날렵하고 잽쌀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현실의 성소수자들에겐 너무도 불리한 상황이다. 동성애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퍼뜨려도 모자랄 판에 어쩔 수 없는 단어의 한계 때문에 대중에게 “성소수자”보다 “호모”로 알려진다는 것은 억울하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다른 한 편으로 대중에게 “호모”가 더 흔하게 쓰이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그저 ‘타자치기 쉽다’는 편의성일 뿐, 어떤 의도나 악의가 숨어있는 건 아니라고 설명한다면 얄팍하게나마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대중은 생각보다 훨씬 더 아무 생각 없다. 그들이 선택한 용어 뒤에도 무슨 나쁜 마음이 숨어있다기 보다는 그저 귀찮음이 내재되어있을 확률이 훨씬 더 높다. 그런 의미에서 부디 대한민국의 성소수자들은 대중의 단어 선택에 상처 받지 않기를, 그리고 대중은 좀 더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기를 바란다. 남에 대한 무관심을 깨닫는 것과 남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는 것. 그 사이 어딘가에 우리가 바라는 평화가 있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