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궁금하다 (2)
이게 쓸데 없는 궁금증일 뿐더러, 지금 내가 위치한 곳 - 경계의 바깥 - 에서는 결코 완전한 답을 얻을 수 없을 거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인정한다. 나는 코끼리가 무엇인지 더듬어가는 눈 먼 생쥐와 다름 없다. 눈 먼 생쥐가 코끼리의 꼬리만 만져보고 “이건 거대한 밧줄이야!”라고 외쳤듯이, 나도 거대한 진실의 아주 일부분만 만져보고 지극히 단편적인 결과만 뱉어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 혼자 궁금하진 않을 것이다. 나 말고도 눈 먼 생쥐는 아주 많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힘을 모아 코끼리를 더듬어가고 서로 이야기를 맞춰보면, 엉성하게나마 코끼리의 전체적인 윤곽은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눈먼 생쥐와 코끼리의 동화에서 눈 먼 생쥐들이 코끼리의 정체를 밝혀내는 데 실패한 이유는, 서로 자기가 맞다고 싸웠기 때문이었다. 만약 생쥐들이 각자 만져본 것을 인정하고 공유했다면, 더 똑똑한 생쥐가 나타나서 코끼리 전체를 훑어볼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코끼리 전체를 탐구할 객기는 없으나, “우리가 얘기한 것들이 다 맞다고 하자! 그리고 서로 이야기를 짜맞춰보자!”라고 말할 용기는 있다. 코끼리 전체를 탐구하는 행동이 ‘객기’라고 한 이유는, 함부로 코끼리의 몸 위를 이곳저곳 탐험하다가 죽을지도 모르는데(실제로든, 비유적인 의미로든) 그걸 무릅쓸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인이 하는 이야기를 언제든지 들을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눈먼 생쥐와 코끼리의 동화에서, 혼자 코끼리의 모든 걸 탐험한 마지막 생쥐는 솔직히 다른 생쥐들의 말을 믿지 않았던 거라고 생각한다. 도무지 남들을 믿을 수 없으니까 홀로 위험을 강행한 것이다. 그 정도의 행동력으로 다른 생쥐들의 이야기를 모두 맞춰보고 결론을 도출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던 것은, 모두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것과 뜻이 통한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모두가 아주 작은 진실의 한조각이라도 쥐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개개인의 경험을, 지식을, 사유를 무시하고 싶지 않다. 소중하게 주워모아 인내심 있게 이어붙이면 분명 아름다운 결과물이 나올 거라는 게 내 믿음이다.
보통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내심이라고 오해하는데, 인내심은 그저 부차적일 뿐이다. 몇 번을 반복해서 말하건대, 믿음이 필요하다. 내가 모은 조각들이 하나하나 소중하다고. 그 결과물은 분명 눈부실 거라고. 조각을 소중히 하고 결과물을 아름답다고 끈질기게 믿지 않으면, 그 과정은 지난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우리가 상대하는 건 결코 코끼리 한 마리 따위가 아니다. 그보다 더 깊고 숭고하며 거대한 진실이다. 당연히 그걸 파악하기 위해 더욱 길고 긴 과정을 예상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나는 나 같은 경계 밖의 사람이 호기심을 갖는 게 허용되길 바란다. 내 호기심이 귀하게 여겨지길 바란다. 수용되길 바란다. 그로써 아름다운 전체 그림을 완성하는 데에 내가 기여할 수 있다고 믿고, 남들도 함께 믿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