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궁금하다 (5)
그것 아는가?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은 성소수자라고 오해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 경험에는 그렇다.
백인이 흑인의 권리를 지지하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외견상 누가 봐도 백인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흑인을 지지한다고 해서 백인으로서 갖는 권리가 퇴색될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그 사람은 차이를 넘어서서 지지하고 있는 거고, 그 사람은 여전히 흑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성이 여성의 권리를 지지하는 것도 문제될 여지가 적다. 남자가 여성 인권을 주장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성별이 바뀌진 않기 때문이다. 관점이 독특하다, 생각이 시대를 앞서간다, 더 신경 쓸 가치가 있는 문제들이 산재해 있지 않느냐, 이런 비판을 들을 수는 있어도, “네가 사실은 여자라서 여성 인권 신장을 주장하는 것 아니냐”라는 질문은 들을 일이 없다.
하지만 성 정체성 문제는 다르다. 성 정체성 문제에 관해 성소수자를 지지하면, “혹시 너도 성소수자 아니냐?”라는 질문을 받기 쉽다. 성소수자라는 건 겉으로 드러나는 표지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심지어 자기가 성소수자라는 걸 숨기고 결혼까지 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기 때문에, 어떤 명확한 기준으로 성소수자와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을 가르는 건 힘들다. 그건 대중으로 하여금 성소수자를 지지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모순적이게도, 인권이 약한 쪽을 지지하는 인권이 강한 쪽은, 자신이 속한 테두리에서 벗어나길 원하지 않는다. 인권이 강한 쪽이 그렇지 않은 쪽을 지지할 수 있는 이유는, “나는 저렇지 않으니까”라는 차이가 부여하는, 자기 위치에 대한 안정감에서 비롯된다. 자기 자리가 명확하고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지지할 수 있는 여유가 나오는 것이다. 일례로, 지금 미국에서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상대적으로 학력도 높은 백인들은 성 평등 문제나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서 비교적 더 열려 있는 시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나, 학력에서나, 상대적으로 불공정한 조건에 놓여있는 백인들은 비백인들에게 더 매섭고, 공격적이며, 차별적이다. ‘인정한다’는 것은 ‘이미 내가 인정 받고 있다’’는 여유에서 온다. 그리고 성소수자 문제는 겉으로 보기에 대체 누가 인정 받는 쪽에 속하고 인정 받지 못하는 쪽에 속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지지하기가 참 어려운 문제다.
나만 해도 이 글을 쓰면서 내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생각이다. 왜냐하면 내가 레즈비언이라서 이 글을 썼다는 오해를 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확고한 성 정체성을 갖고 살아왔고, 소수자로서 받는 차별을 당하지 않고 지냈다. 그걸 포기하기 싫다. 내가 성소수자들을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나까지 성소수자라고 오해를 받는다면 난 좀 억울하고 답답할 것 같다. 그걸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익명으로 이 글을 쓰는 것이다. 만약 성소수자가 인종이나 남성/여성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정체성이었다면 문제는 달랐을 것이다. 나는 성소수자가 아니라는 걸 누구나 알 수 있었을 것이고, 나는 내 정체성을 의심 받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없이 이 글을 실명으로 공개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나는 어딜 가나 인종차별 문제, 여성 차별 문제, 그리고 국적 차별 문제에서 기꺼이 목소리를 낼 준비가 되어있지만,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없다. 관련 글을 쓰고 유권자로서 한 표를 행사할 권리를 행사하는 것까진 거리낄 게 없는데, ‘얼굴을 드러낼 각오’라던가, ‘행동할 준비’는 평생 가도 못 할 것 같다. 지금의 내 위치를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기적이라는 것 안다. 근데, 내가 알기론 이러한 이기심 없는 사람치고 성공한 사례는 역사상 부처님(왕자라는 지위를 포기하고 열반에 들기 위해 고행을 자처한 성인) 밖에 없다. 예수님도 수난 받는 민족의 몸에 잉태되셔서 수난 받는 자로서 행동하셨다. 태생부터 수난 받는 자가 아닌, 그 바깥의 사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기꺼이 살아있는 인간의 몸으로 그 테두리를 걸어서 넘어간 사람은, 강조하건대, 문자로 기록된 5천 년 넘는 인류 역사 중 부처 한 사람 밖에 없었다. 그러니, 부처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을 나한테 요구하지 않길 바란다. 또, 부처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이 이 시대에 한 번 더 일어나길 바라진 말자. 부처가 다시 태어나 경계를 넘는 걸 보는 것보다는, 수난 받는 자들이 들고 일어나 혁명을 일으키는 게 더 빠르고 쉬울 것이다. 그만큼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문제는 대중들의 지지를 얻기 참 어렵고, 당사자들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특별한 문제로 고착되었다고 본다. 나 같은 사람들은 기꺼이 도울 수는 있지만, 절대 전선에 나서진 않을 것이다. 부처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