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한다 (6)
인간의 삶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숫자를 꼽으라고 하면,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 나라마다, 민족마다 선택하는 숫자는 다르겠지만, 나는 2야말로 범인류적이고 범세계적인 숫자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많은 철학, 문학, 사상이 숫자 2에 기반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놀라울 정도다.
우선 선과 악이라는 개념이 있다. 마니교 시대 때부터 선의 신과 악의 신이 서로 싸우면서 인간의 내세를 평가한다는 이 양분(兩分)된 신화는 천국과 지옥, 이성과 감성, 현세와 내세 등 수많은 철학에 영향을 주었다. 또, 부모가 있다. 두 남녀가 만나야 비로소 새 생명을 낳을 수 있다는 현상은 언어가 생기기 이전부터 인류에게 큰 인상을 남겼을 것이다. 그건 서로 상반된 육체가 합일화되어 창조를 일궈내는 순간이고, ‘섞이다’는 개념의 시작이고, 내가 죽어도 내 자손은 계속 남는다는 영생의 은유였을 것이다. 남녀 뿐만 아니라 살아움직이는 모든 동물들이 둘씩 짝을 이뤄 새끼를 낳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 원리는 문자 이전 시대의 인간들에게 어떻게 비춰졌을까. 마치 세상의 비밀을 엿본 것만 같은 떨림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심지어 육체마저도 숫자 2와 매우 친근하다. 뇌는 좌반구와 우반구로 나누어져 있고, 우리의 손은 왼손과 오른손 2개이며, 눈도 왼쪽과 오른쪽 두 개다. 이보다 더 결여되거나 뭔가가 더 추가되면 괴물 취급을 받는다. 따라서 숫자 2는 건강의 상징이자 정상의 표준이기도 하다. 이건 아주 오래 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기준이고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숫자 1보다 숫자 2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의 목숨은 하나, 우리의 머리도 하나, 우리의 심장도 하나지만, 눈에 보이는 것들은 2가 대부분이니까. 무엇보다 아직 문자도, 역사도 없던 시절에 한 원시인이 다른 원시인에게 자기 먹을 것을 나눠주는 순간을 상상하면, 1은 내 것이고 원초적인 것이지만, 2는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이고, 나눔이다. 나눔을 통해 누군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원시인은 고기를 둘로 나누고서야 처음으로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니 2는 함께한다는 것의 시작이다. 첫 걸음이다. 고기를 둘로 나눌 수 있는 원시인만이 둘을 셋으로, 셋을 넷으로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상 원시인이 숫자 2라는 개념을 느낀 순간부터 인간은 여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문명을 세울 운명이 정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마 그때부터 인류는 눈에 보이는 모든 세상을 둘로 나누기 시작했을 것이다. 하늘이 검을 때, 하늘이 보라색일 때, 하늘이 푸를 때, 하늘이 하얄 때를 합치고 둘로 나눠서 낮과 밤이라고 명명하고, 날이 좋을 때, 날이 궂을 때, 날이 따가울 때와 날이 선선할 때는 합치고 둘로 나눠 가뭄과 풍년이라고 이름 붙였을 것이다. 아이와 어른, 남자와 여자라는 단어도 그때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제야 인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숫자 2 다음으로 더 큰 개념, 무한을 향해 고개를 돌리지 않았을까? 주변의 것들을 둘로 나눠 이해하고 받아들인 순간에서야,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그 무수한 별들을 헤아릴 여유가 생겼을 것 같다. 그러니까, 문명은 결국 숫자 2에서 시작해서 무한을 향해 놓인 거대한 화살표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2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무한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있지만, 우리의 발이 여전히 2에 놓여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다.
이토록 뿌리 깊은 2이니, 이 2를 놓지 못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우리는 여전히 2에 사로잡혀 있다. 세상이 흑백으로 나눠져 있다고 생각하는 게 훨씬 더 익숙하고, 편하고, 성 정체성도 남성과 여성 외에 다른 걸 생각하기 힘들다. 하지만 우린 더 이상 원시인이 아니지 않은가. 이제 숫자 2를 놓아줄 때도 됐다. 우리의 뇌에는 좌반구와 우반구 뿐만 아니라 다른 부위도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고, 비록 인간은 눈이 2개지만 그렇지 않은 생물들도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으며, 하늘의 색깔은 낮과 밤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다채롭다. 우리는 무한을 향해 눈을 떠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남성과 여성보다 더 범주가 많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2에서 벗어나 좀 더 큰 가능성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고기를 나눠준 원시인이 밤하늘을 보고 무수한 별들을 세어보며 느꼈을 웅장함을, 우리는 남성과 여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 정체성을 인정했을 때 다시 한 번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웅장함은 분명 기존의 상식을 부서뜨리고 얻을 만한 가치가 있다. 땅으로 내려앉을 듯한 거대한 은하를 이해하는 게, 친우에게 고기를 나눠줄 만한 이유가 될 수 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