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가 H에게 (21)

나는 생각한다 (5)

by 흔들리는별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에릭’들이 있을까? 내가 사는 이 땅에는 얼마나 많을까? 그 많은 에릭들을 일일이 다 응원한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중에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의 성 정체성이 무엇인지와는 별개로 나는 ‘에릭’이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할 것이다. 단순히 어떤 ‘에릭’이 성소수자 카테고리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좋아하려 애쓰지도 않을 거고, 반대로 그 이유만 갖고 미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냥, 직접 만나보고 내가 판단하고 싶다. 최소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처럼 그 ‘에릭’에 대해 뭔가 알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에릭’의 가족들은, ‘에릭’을 알고, 함께 살아왔고, 심지어 ‘에릭’을 낳기까지 했을 그 사람들은, 나와는 다르지 않은가. 그들은 나와는 달리 그들을 좋아해야 할 이유도, 싫어해야 할 이유도 차고 넘치게 알 것 아닌가. 그들이 ‘에릭’이라는 것, 그거 하나를 빼도 말이다.

결국 내가 생각하는 건, 누군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이유 중에 그 사람의 정체성만큼은 제외하자는 것이다. 굳이 정체성을 물고 늘어지지 않아도 좋아할 이유는 많을 것이다. 싫어할 이유도 많을 것이다. 내가 백인 에릭에게서 뭔지 모를 콧대를 느꼈고, 흑인 에릭에게서 대놓고 말할 거리가 못 되는 동정심을 품었듯이, 둘의 성 정체성을 물고 늘어지지 않더라도 나는 넉넉히 그들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립할 수 있었다. “나는 에릭이 콧대가 높아서 싫다”라고 말하는 것과 “나는 에릭이 게이라서 싫다”라고 말하는 건 무게 자체가 다르지 않은가? 또, “난 에릭이 성소수자라서 동정한다”와 “난 에릭이 부모에게 버림 받아서 동정한다”라고 말하는 것도 차원이 다르다. 해당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다루었지만, 결국 그건 인간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게 인간의 이야기가 아닌 동물, 외계인, 혹은 식물에 대한 다큐멘터리였다면 나는 그걸 그토록 집중해서 보지 않았을 것이다. 나와 같은,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의 이야기가 나는 즐거웠다. 감동적이었고, 슬펐다. 바닷속 생물을 자처하는 인간들이라는 점이 독특하긴 하지만, 어쨌든 인간이지 않는가. 머피플도 인어 코스튬을 입을 때 반은 물고기지만 반은 인간임을 드러낸다. 그건 어쩌면, 그들이 본질적으로 인어의 물고기 꼬리가 아닌 인간적인 매력에 끌려서 그 코스튬을 선택했다는 반증이 아닐까. 옛날 옛적 안데르센의 인어가 인간 왕자에게 반해서 육지로 올라왔듯이, 그들은 인어의 인간미에 반해 물속으로 내려간 거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육지를 피해, 반쯤이나마 그래도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 그들은 어쩌면 육지에 있을 땐 스스로를 인간이 아니라 물고기라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마른 땅에서 도저히 숨을 쉴 수 없는 어류라고 자조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물에 들어가는 순간, 그들은 최소 반은 인간이 된다. 그 반쪽짜리 마법이, 그들이 찾을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축복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축복을 존중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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