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급의 SF소설이란
저는 SF소설이야말로 소설이 가진 힘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한다고 생각합니다. SF를 좋아하지 않는 분들에게는 뜬금없게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소설의 본질인 허구성 때문입니다. 장르의 특성상 SF소설의 배경은 일반적인 소설의 일상적인 시공간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습니다.
까마득한 과거를 거슬러 올라서 우주가 시작하는 순간으로 가거나 엔트로피 증가로 사멸하는 우주로 가기도 합니다. 태양계를 벗어나 미지의 항성과 행성을 헤매고 우리 은하를 벗어나 까마득히 멀리 있는 외우주로 도약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거대한 규모의 시공간을 글자만으로 생생하게 직조해 내는 SF소설을 만나는 경험은 황홀합니다. 과거에 비해서 그래픽 기술도 눈부시게 발전했다지만 영상은 SF소설가가 풀어내는 광대한 세계관을 오롯이 담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삼체>를 읽으며 그간 잊고 있던 SF소설의 재미를 오래간만에 느꼈습니다. 3부작으로 구성된 <삼체>는 권수가 거듭될수록 분량도 늘어나서 3부는 손에 쥐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두툼합니다. 1부만 보는데도 꽤나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지만 3부까지 쉼 없이 읽을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는 독서가 얼마만인지 기억도 못하겠습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등장하는 경이로운 상상력과 치밀한 세계관에 감탄하며 즐겁게 끊임없이 읽었습니다.
스포일러가 걱정되어 자세한 이야기를 적지 않겠습니다만 <삼체>는 인류와 외계의 대결에 대한 이야기이고 외계의 공격에 맞서는 인류의 지도자에 대한 서사가 중심축을 이룹니다. 각각 예지자, 면벽자, 검잡이가 등장해서 외계에 맞서는 인류를 이끌어 나갑니다. 1부의 예지자가 외계의 침입을 밝혀내고, 2부의 면벽자는 지구를 지켜내며, 3부의 검잡이가 미지의 위협에 맞섭니다. 휴고상은 받은 1부만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습니다만 나머지 두 권을 읽지 않을 정도로 자제력이 강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중국 작가가 집필했기에 중국식 용어나 인물명 때문에 느껴지는 약간의 어색함 외에는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중국이 미국을 대신해서 세계를 선도하는 것도 터무니없습니다만 중화사상에서는 당연한 일이겠지요. 저의 최애 SF소설은 <파운데이션>과 <로봇>이었는데, 이들의 곁에 <삼체>를 둘만 합니다. SF소설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망설이지 말고 읽으시길 권합니다. 다만, 충분히 여유로운 시간을 확보하셔야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으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