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으로 죽음을 앞둔 괴팍한 노작가가 늘어놓는 하찮은 일상 이야기
<죽는게 뭐라고>는 정말 우연한 계기로 집어 들었습니다. <죽은자의 집청소>를 읽은 이후에 김완 작가가 누구인지 궁금해서 인터뷰 기사를 찾아보았는데, 작가는 쓰고 싶은 책의 예시로 <죽는게 뭐라고>를 들었습니다. 자신은 책을 쓰면서 죽음을 너무 무겁게 다뤄서 아쉽다면서 <죽는게 뭐라고>처럼 죽음에 대한 가벼운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하니 도대체 무슨 책인지 궁금해졌습니다. 당장 책을 찾아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표지에 적힌 부제는 '시크한 독거 작가의 죽음 철학'입니다. 사노 요코라는 저자명으로 일본 작가의 책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사실 저는 일본 작가의 책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반일 감정과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 때문인데, 일본인의 이름은 아무리 읽어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을 외우지 못하니 이야기를 이해하며 따라가기도 벅찰 지경이니 재미를 느낄 리 만무합니다.
특히 여러 명의 인물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소설은 정말 곤란합니다. 한창 읽다가도 '그런데 이 사람은 누구였지?' 하며 다시 앞부분을 펼쳐서 확인해야 하니 번거롭기도 하고 이야기의 맥이 끊겨서 재미가 떨어집니다. 제가 유일하게 읽을만하다고 생각하는 일본 소설가는 무라카미 하루키입니다. 비교적 적은 수의 사람들이 등장하고, 이야기의 속도 역시 빠르지 않기에 저같이 아둔한 사람도 그럭저럭 읽어나갈 수 있습니다.
다행히 <죽는게 뭐라고>는 에세이였기에 포기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몇 페이지를 넘기다가 이내 책을 덮었습니다. 불쑥 등장하는 터무니없는 내용에 당황했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으며 '내가 도대체 무슨 책을 보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을 처음 해봤습니다. 저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책이었습니다. 죽음의 공포에 맞설 용기를 불어넣는 책이겠거니 하는 저의 기대와는 반대로 저자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비웃습니다.
암에 걸려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저자는 오히려 암이 좋은 병이라고 합니다. 다른 병은 아프게 해서 고생만 하고 죽지는 않는데 암에 걸리면 확실하게 죽을 수 있으니 좋다는 말입니다. 암에 걸리면 주변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도 좋은 점이라고 합니다. 암과 싸우는 일은 무가치한 일이라고 비웃습니다. 노인은 장애인이나 마찬가지니 벌써 일흔이 된 자신이 죽을 수 있는 암에 걸린 일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도대체 이 책을 계속 읽어야 할지 고민이 빠졌습니다. 좋은 책을 볼 시간도 없는데 쓸데없는 이야기를 읽는데 시간을 허비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일단 정신 나간 소리를 지껄이는 저자가 누구인지나 알아보자는 심정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뜻밖에도 저자인 사노 요코는 유명 작가였습니다. 동화책, 에세이를 중심으로 평생 173권의 책을 집필했다고 하니 대단합니다. 대표작이라는 <100만번 산 고양이>는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들어는 본 책입니다. 그녀는 책의 내용처럼 암으로 투병하다가 2010년에 72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다시 책을 펼쳐 들었습니다. 멀쩡한 작가가 썼고 인터넷 서평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책을 다 읽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휘갈겨 쓴 문장이라서 저도 휘리릭 넘기며 읽었습니다. <죽는게 뭐라고>를 읽은 후에는 자매품인 <사는게 뭐라고>까지 집어 들었습니다. <사는게 뭐라고>는 분량이 더 많아서 약간 지겨웠지만 참고 읽었습니다. 어차피 휘리릭 넘기면 되니까요. 사흘에 걸쳐서 두 권을 읽었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는 이해했습니다. '걱정을 하든 안 하든 어차피 죽음은 예정되어 있고 바꿀 수 없다. 죽기 전에는 살아있으니 살아 있는 동안에 열심히 살자. 열심히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먹고, 자고, 싸고, 놀면서 일상에서 행복을 찾아라'정도가 되겠네요. 사실 옳은 말입니다. 큰 병에 걸려서 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가장 많이 걱정하는 것은 매일매일의 식사, 배설, 목욕 등의 일상생활입니다. 목숨을 위협하는 병이 큰일이지만 매 순간 병 생각만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일상생활을 해야 하고, 일상생활에서 기쁨을 찾으라는 지당한 말씀입니다.
다만 이 책을 다른 사람에게 섣불리 추천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성의 없어 보이는 문장도 그렇고, 괴팍한 노인네의 잔소리 같았기 때문입니다. 삐딱한 표정의 기타노 다케시가 "야! 왜 그따위로 사는데? 한심해서 못 봐주겠다! 너는 글러먹은 태도를 고쳐야 돼!" 하며 꼰대조로 꾸짖는 느낌입니다. 전후 민주화 교육이 잘못되었다는 저자의 푸념도 마뜩지 않았고요. 저처럼 이런 사람도 있네하고 휘리릭 넘기는 마음이시라면 시도해 볼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