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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델리의 볼거리 - 2. 후마윤의 무덤

타지마할의 선배

by 김컨

델리 관광꺼리의 두 번째는 후마윤의 무덤입니다. 타지마할이 첫 번째이지만 엄밀히 이야기하면 델리가 아닌 아그라에 있기 때문에 델리에 있는 관광지에서는 후마윤의 무덤을 첫손가락으로 꼽겠습니다. 타지마할과 후마윤의 무덤은 둘 다 무굴제국을 통지하던 왕족의 무덤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만든 목적과 시기는 다릅니다. 1650년대에 만들어진 타지마할은 황제가 세운 왕비의 무덤이고, 그로부터 1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후마윤의 무덤은 왕비가 만든 황제의 무덤입니다. 무굴제국의 2대 황제인 후마윤이 죽자 그의 아내인 비가 베굼 왕비가 그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서 후마윤의 무덤을 세웠습니다. 후마윤의 무덤이 타지마할의 선배인 셈입니다.

타지마할과 후마윤의 무덤은 여러모로 비슷한 모습입니다. 무덤 앞에는 기다란 수로와 나무, 여러 가지 구조물들이 좌우 대칭을 이루는 거대한 정원이 조성되어 있고, 원색의 화려하고 정교한 장식으로 치장된 무덤 위에는 거대한 키오스크 돔이 얹혀 있습니다. 이러한 건축 기법을 페르시아 건축 양식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이를 따라서 후마윤의 무덤이 지어졌고, 100년 뒤에 만들어진 타지마할에서 그 절정을 이룹니다.


후마윤의 무덤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티켓을 구매해야 합니다. 인도답게 외국인은 바가지요금을 감수해야 합니다. 내국인은 40루피이지만 외국인은 무려 15배인 600루피를 내야 합니다. 우리 돈으로 1만 원쯤 하니 부담스러워서 못 들어갈 정도는 아니지만 차별 대우를 받는 느낌은 썩 달갑지 않습니다. 입장료를 지불하면 동전 모양의 입장권을 받는데, 입구에서 동전을 태그 하면 문이 열립니다. 간단한 몸수색을 하고 입구를 통과하면 드디어 후마윤의 무덤에 입장할 수 있습니다.

입구를 지나서 조금 걷다 보면 길이 두 갈래로 나눠집니다. 직진하면 후마윤의 무덤, 오른쪽으로 가면 이샤칸의 무덤입니다. 먼저 이샤칸의 무덤으로 향했습니다. 이샤칸과 후마윤의 관계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담한 규모를 보니 왕족은 아닌 듯하고 귀족 정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팔각형의 건물 위에 커다란 모스크 돔이 얹혀 있는 무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무덤의 내부를 구경하고 있으니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쓸던 인도 노인이 저를 부릅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무덤 내부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으니 마음껏 찍으라고 합니다. 공연한 관심이 왠지 부담스럽습니다.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있는 저에게 다시 노인이 다가옵니다. 무덤에 대한 설명을 자청합니다. 무덤 안에 줄지어 놓여 있는 관을 가리키며 누가 묻혀 있는지 설명을 해줍니다. 가운데에 이샤칸이 묻혀있고, 그 옆에는 부인과 두 명의 자식들이 같이 묻혀 있다고 합니다. 설명을 마친 인도 노인은 다시 저를 끌고 창문으로 데려갑니다. 돌로 만든 창문은 십자가 모양의 구멍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구멍 하나를 가리키며 "베스트 포토"라고 말하며 사진을 찍는 시늉을 합니다. 그가 알려준 데로 사진을 찍어보니 구멍의 가장자리가 외부 풍경을 감싸면서 꽤나 근사한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고맙다는 감사를 표하고 자리를 피했습니다. 과거의 경험상 인도의 관광지에서 영문모를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은 딱 두 가지 유형이었기 때문입니다. 사기꾼이 아니면 팁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고액권밖에 없었기에 팁을 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500루피를 허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그는 결국 팁을 요구했지만 주지 못했습니다.)


이샤칸의 무덤을 나와서 다시 갈림길로 돌아갔습니다. 후마윤의 무덤을 볼 차례입니다. 갈림길에서 100미터쯤을 걸어가자 다시 입구가 등장합니다. 타지마할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아치 모양의 문입니다. 아치를 통과하자 후마윤의 무덤이 보입니다. 지붕 위에 커다란 모스크돔이 얹혀 있는 모양이 타지마할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다만 색상은 하얀색보다는 적갈색이 주를 이루고 있고 좀 더 이슬람스러운 느낌입니다.

정원을 가로질러서 50여 미터를 걸어가서 후마윤의 무덤 앞에 도착했습니다. 정원과 후마윤의 무덤은 가파른 계단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승과 저승을 나누는 계단 같은 느낌입니다. 가파른 계단을 모두 오르자 드디어 후마윤의 무덤이 바로 눈앞에 있습니다. 건물 외벽은 적갈색의 커다란 벽돌을 켜켜이 쌓아 올려서 만들었고, 모퉁이는 하얀색 선으로 치장했습니다. 군데군데 새겨진 별모양으로 이슬람 양식의 건물이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멀리서 봤을 때는 타지마할과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만 좀 더 이슬람 색채가 강하고 훨씬 투박한 느낌입니다.

너무나 압도적인 타지마할을 보고 온 이후였기에 후마윤의 무덤 자체는 그리 인상 깊지 않았습니다. 후마윤의 무덤에서 좋았던 것은 너무나 평화로운 정원의 분위기였습니다. 규모로 따지면 타지마할의 정원이 훨씬 크고 호화로웠지만 너무나 많은 관광객들로 번잡한 분위기였습니다. 후마윤의 무덤에는 방문객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인도에서 오랜만에 느끼는 평화였습니다. 타지마할을 갈 시간이 없는 분들이라면 후마윤의 무덤이라도 꼭 방문하시길 당부드립니다. 타지마할을 다녀오신 분들이라도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정원을 즐기기 위해서 방문하실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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