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오이드 사태에 휘말린 경영 컨설팅
점차 죽음에 민감해지는 나이가 되어감을 실감합니다. 과거에는 유명인의 부고를 접해도 "그 사람이 벌써?" 하며 무심하게 넘겼지만 이제는 무슨 일로 세상을 떴는지 꼼꼼하게 들여다보게 됩니다. 최근에 유명을 달리한 메튜 페리의 경우가 특히 그러했습니다. 본명보다 시트콤 프렌즈에서 연기한 캐릭터의 이름인 "챈들러 빙"으로 더 익숙한 그는 지난 10월 28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54세의 나이에 불과하니 아쉬움이 더 커집니다.
매사에 덤벙거리고 틈만 생기면 여자에게 들이대는 유쾌한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왠지 모를 침울한 분위기도 겸비해서 묘한 매력을 풍기던 그의 사인은 불분명합니다. 자택의 욕조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지만 자살 혹은 타살로 특정할 아무런 단서가 없기에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이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다만 생전에 그를 괴롭혔던 약물 중독이 죽음의 원인이지 않을까 하는 추측만 할 뿐입니다.
그는 기질적으로 중독에 약했던 것 같습니다. 14살에 와인을 처음 입에 댄 이후 18살 이후에는 매일 술을 마실 정도의 알코올 중독이었습니다. 프렌즈 출연으로 한창 잘 나가던 1997년부터는 약물에도 손을 대기 시작합니다. 영화 촬영 중 당한 제트스키 사고를 치료하며 처방받은 진통제인 바이코딘이 화근이었습니다. 그는 하루에 무려 55알의 바이코딘을 먹을 정도로 중독되어서 엄청난 체중 변화는 물론이고, 병원과 재활원을 오가는 중독자 생활을 거듭합니다.
메튜 페리를 약물 중독으로 이끈 바이코딘은 아세트아미노펜과 하이드로코돈으로 이루어진 진통제입니다. 아세트아미노펜은 타이레놀에도 쓰일 정도로 흔한 성분이지만, 문제는 하이드로코돈입니다. 하이드로코돈은 오피오이드 계열의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입니다. 오피오이드 계열의 진통제는 지난 미국에서 엄청난 사회 문제를 일으키고 있으며, 이는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우리와 친숙하지 않은 소재라서 생소합니다만 미국은 지난 20여 년간 오피오이드 계열 약물의 오남용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1999년부터 2018년까지 20년간 무려 45만 명이 약물 오남용으로 사망했고, 2021년 이후에는 매년 10만 명 이상이 죽고 있습니다. 실제 전염병은 아니지만 웬만한 병이 초래하는 사망자 수를 능가하는 수준이기에 오피오이드 전염병(Opioid Epidemic)으로 불릴 만큼 심각합니다.
오피오이드 계열 약물 남용이 시작해서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간 일련의 과정은 세계 최강대국으로 군림하는 미국이 안고 있는 각종 사회 문제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탐욕적인 기업이 거리낌 없이 자행하는 비윤리적인 돈벌이, 자본과 결탁해서 기업의 나팔수 노릇을 한 의학계,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들의 곁을 파고든 마약 유통, 터무니없이 복잡하고 막대한 비용을 필요로 하는 비효율적인 사법체계가 종합해서 빚어낸 결과로 10년이 넘도록 약물이 합법적으로 남용되었고, 지금은 매년 수만 명이 죽는 비극으로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끔찍한 비극은 제약회사의 탐욕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제약사인 퍼듀는 옥시콘틴이라는 아편계 진통제를 1996년에 출시하면서 공격적인 광고를 합니다. 다른 아편계 진통제와는 달리 옥시콘틴은 중독에 빠질 확률이 1퍼센트 이하로 중독성이 매우 낮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통계를 조작해서 만들어낸 거짓 광고였지만 퍼듀 사는 미국 각지에 영업 사원들을 파견하며 옥시콘틴의 우수성을 홍보합니다.
옥시콘틴이 출시되는 시점에 발표된 미국 통증 학회의 메시지도 공교롭습니다. 미국 통증 소사이어티라는 학회는 바이탈 사인에 '통증'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전통적인 바이탈 사인은 체온, 혈압, 맥박, 호흡수의 4가지입니다.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생명이 위급한 상태를 뜻하는 중요한 지표입니다. 여기에 통증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했으니 통증을 방치하면 생명이 위태로워진다는 의미입니다.
문외한에게는 터무니없이 느껴지는 통증 학회의 주장이 의사들에게는 먹혔던 것 같습니다. 일선 병원의 의사들은 환자들이 느끼는 통증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적극적으로 고통을 줄이는 방향으로 치료를 합니다. 과거에는 상상도 못 할 분량의 진통제가 환자들에게 아낌없이 처방됩니다. 천조국인 미국다운 물량 공세였습니다. 옥시콘틴을 포함한 진통제는 날개 달린 듯 팔려 나갔고, 환자들은 나날이 진통제에 중독됩니다.
성황리에 사용된 진통제의 효과는 느리지만 강력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이 되자 오피오이드에 중독된 수많은 환자가 발생합니다. 뒤늦게 문제를 깨달은 의료계는 약물 처방을 줄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미 약물에 중독된 환자들은 약물을 구하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더 이상 의사로부터 진통제를 처방받지 못한 중독자들은 대체제를 찾았고, 오피오이드 계열의 마약인 헤로인을 구매하기 시작합니다.
헤로인으로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중독자의 수요가 폭증하자 또 다른 대체제가 등장합니다. 바로 죽음의 약물인 펜타닐입니다. 일반적인 진통제보다 50~100배는 더 강력하지만 극미량으로도 호흡을 멎게 하는 치명적인 약물입니다. 말기 암환자의 통증 완화에 극소량만 사용되는 펜타닐이 불법 마약으로 유통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됩니다. 오피오이드 중독자가 펜타닐에 손을 대면서 사망자수는 폭증합니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사태가 심각해지자 미국 정부가 나섭니다. 2016년 3월 미국 CDC는 오피오이드 처방을 규제하는 지침을 발표했고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통령 직속 기구로 오피오이드 위기대책위원회를 설립합니다. 미국 주정부들은 오피오이드 피해자들을 대신해 제약사와 유통사 등을 상대로 피해보상 소송을 제기합니다.
퍼듀, 존슨앤드존슨 등 내로라는 제약사들과 아메리카리소스버진, 월마트 등 대형 유통회사가 소송의 상대인데 소송 건수만 2,500여 건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입니다. 2,500여 건의 소송을 하나씩 진행하는 것은 너무나 소모적인 일이기에 이를 묶어서 일괄적으로 합의하는 방안을 미국 주정부들이 검토하고 있는데 전체 합의금과 벌금의 규모는 수십조 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번 사태의 원흉인 퍼듀는 이미 2019년 10월에 중범죄 협의를 시인하고 83억 달러(9조 4천억 원)의 벌금을 내기로 법무부와 합의했습니다. 다른 제약사와 대형 의약품 유통업체도 거액의 합의금을 냈습니다. 존슨앤드존슨 50억 달러(약 7조 900억 원), 테바제약 43억 5000만 달러(약 6조 1700억 원), 애브비 23억 7000만 달러(약 3조 3600억 원), 엔도인터내셔널 4억 5000만 달러(약 6380억 원) 등의 합의금이 확정되었으며, 앞으로도 그 액수는 더욱 커질 전망입니다.
매튜 페리가 죽기 한 달 전인 9월 27일에 오피오이드 사태에 관련된 맥킨지에 대한 기사가 보도됩니다. 맥킨지가 오피오이드 진통제 남용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수백 개의 미국 지방정부가 제기한 소송을 해결하기 위해서 2억 3천만 달러(약 3,000억 원)의 합의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입니다. 기사를 찾아보니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이미 2021년 3월에도 유사한 내용으로 합의금을 지급한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금액은 더욱 커서 무려 6억 달러(약 7,700억 원)에 달합니다. 두건을 합치면 우리 돈으로 1조 원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합의금입니다.
미국 지방정부의 주장에 따르면 맥킨지는 오피오이드 사태를 촉발한 퍼듀에 옥시콘틴의 마케팅과 판매 촉진을 위한 컨설팅을 제공했고, 피해자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흥미롭게도 맥킨지는 거액의 합의금만 지불할 뿐, 어떠한 법적 책임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회사의 홈페이지에 게시된 글도 일체의 불법 행위가 없었음을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습니다. '미안해서 돈은 내지만 내 잘못은 없어'라는 식일까요? 우리의 정서로는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만 미국은 다른 것 같습니다.
맥킨지가 퍼듀에 제공한 컨설팅이 불법적인 내용을 포함하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불법을 조장하는 조언을 제공할 만큼 어리석은 행동을 했을 리 없다고 믿습니다. 다만 제가 관심을 두고 보는 지점은 각종 스캔들이 불거져 나올 때마다 맥킨지의 이름이 거론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뉴욕 타임스의 기사에 따르면 맥킨지는 미국 청소년들에게 급속하게 퍼져서 사회 문제가 되었던 전자담배 Juul, 필립모리스 등의 담배회사에 자문을 제공했습니다. 또 다른 기사에 따르면 맥킨지는 트럼프 정부의 이민자 관리 정책에 대한 조언을 제공했으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체결한 계약이 수상쩍다는 의심을 사고 있습니다.
각종 스캔들에 맥킨지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실제로 의심스러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수도 있고, 있지도 않은 일인데도 유명세 때문에 억울한 모함을 받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세계 최고의 전략 컨설팅사라니 자극적인 기사를 찾아다니는 미디어의 표적이 되기에 딱 좋습니다. 어쩌면 조언만 제공하던 과거와 달리 고객사의 실제 실행 과정에도 컨설팅 사가 밀접하게 개입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조언이 아니라 행동을 했다면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맞기 때문이지요.
이유야 어떻든지 맥킨지의 변화는 불가피해 보입니다. 고상한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지 못하면 영업에 치명타를 입기 때문입니다. 카다피 스캔들로 한순간에 날아간 모니터 그룹과 같은 운명을 맞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오랫동안 고집스럽게 지켜온 '고객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라'는 원칙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지금보다는 지역 사회와 국가의 이익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천천히 선회하지 않을까요. 이미 1970년대에 회사에 닥쳤던 위기를 훌륭하게 극복한 전력이 있기에 이번의 위기도 잘 극복하리라 응원합니다.
이 글은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을 추가하거나, 저자의 감상을 적는 시리즈물의 일환입니다. 시리즈물의 취지와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의 내용은 다음의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이 글과 관련된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의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1976년 | 전략에 눈 뜬 『맥킨지앤드컴퍼니』
1983년 | 경영대학원의 전진,『모니터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