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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컨 Sep 19. 2023

월스트리트 몽키와 경영 컨설팅

투자 은행과 경영 컨설팅

# 월스트리트 몽키에서 느낀 동질감

10년도 더 된 옛날이야기입니다. 주니어 컨설턴트로서 금융업의 업무 프로세스와 업무 처리에 필요한 정보시스템의 기능을 정리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돈을 융통하는 사업을 모두 금융업이라 퉁쳐서 말하니 그게 그것 같습니다만, 금융업은 하나로 묶기에는 성격이 매우 다른 세부 업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업에 필요한 인허가, 취급 상품, 수익 모델, 리스크 관리 방법 등 어떤 기준을 적용하느냐에 따라서 금융업은 다양하게 분류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상위 레벨의 분류는 상식선에서 가능합니다. 아마도 은행업, 여신전문업, 금융투자업, 보험업의 4개로 나누었던 것 같습니다. 각각의 업종의 업무를 다시 세분화하고 업무 처리에 필요한 정보 시스템의 기능을 맵핑하는 다소 기계적인 작업이었습니다.


기계적인 반복 작업을 하던 와중에 금융투자업에 흥미가 생겼습니다. 일단 금융투자업은 다른 업종에 비해서 취급하는 상품이 굉장히 다양했습니다. 은행은 개인/기업, 여신전문업은 신용카드/여신/리스, 보험업은 생명/손해보험으로 비교적 간단하고 명확하게 나눌 수 있습니다. 반면, 금융투자업은 트레이딩(Trading), 자산관리(Wealth Management), 자기자본투자(Principal Investment), 투자금융(Investment Banking) 등으로 쪼개졌고, 세부 업무에서 취급하는 상품의 가짓수도 많고 복잡해서 괜한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은행, 카드, 보험과 달리 금융투자는 일상 생황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생소한 분야라는 점도 한몫한 것 같습니다.


이 무렵에 생긴 금융투자업에 대한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사본 책 중의 하나가 바로 <월스트리트 몽키>입니다. 직설적인 책제목과 같이 전 세계 투자금융의 중심가인 월스트리트에 갓 들어선 신입 직원들이 혹독한 업무 환경에서 좌충우돌하며 버텨내는 생존기가 줄거리입니다. 하도 오래전에 읽어서 작가의 시니컬한 표현이 재미있었다는 감상 외에 세부적인 내용에 대한 기억은 흐릿합니다만 한 가지는 뚜렷하게 인상에 남았습니다.


경영 컨설턴트 만큼 힘들게 갈리는 투자은행원


# 어쩌면 테일러 대신 JP모건

투자금융사에서 일하는 행태와 분위기가 컨설팅사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는 점입니다. 고객사에서 수주하기 위한 제안서를 며칠 밤낮을 바쳐서 작성하는 직원들, 제안서의 내용을 자세히 읽어 보지도 않고 보완이 필요한 사항을 쏟아내는 파트너, 부서진 멘털을 부여잡으며 제안서를 수정하는 직원들과 다시 잔소리를 늘어놓는 파트너가 만들어내는 환장의 다람쥐 쳇바퀴를 보면서 '어쩌면 이렇게 똑같을 수 있나!'하고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를 쓰면서 알게 된 사실입니다만 1930년대 이전의 투자금융사는 컨설팅사의 역할도 했었기에 현재에도 그러한 일하는 행태와 분위기가 남은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투자금융사가 했던 컨설팅 업무가 시기적으로 컨설팅사를 앞섰으니 투자금융사의 후예가 컨설팅사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투자금융사의 일하는 분위기를 컨설팅사가 물려받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합니다. 투자금융사의 컨설팅 업무를 금지한 글래스-스티걸법이 없었다면 프레드릭 테일러 대신에 JP 모건을 최초의 컨설턴트라고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1930년대의 금융 규제로 투자금융사의 컨설팅 업무는 금지되었고, 그 빈자리를 컨설팅사가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컨설팅은 컨설팅사에게, 투자금융은 투자금융사에게  돌아간 셈이니 컨설팅사로서는 천만다행입니다.


두 업종의 분리는 탈출구를 꿈꾸는 은행원과 컨설턴트에게도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유사한 업무 분위기 탓인지 컨설팅과 투자금융간의 전직은 심심치 않게 일어납니다. 경험상 투자금융으로 가는 컨설턴트가 그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많긴 했지만 다른 업종보다는 인력 교류가 활발한 편입니다.



이 글은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을 추가하거나, 저자의 감상을 적는 시리즈물의 일환입니다. 시리즈물의 취지와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의 내용은 다음의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 B컷#1. 구성 구상

이 글과 관련된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의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1933년 | 『글래스-스티걸법』 규제가 만든 첫 번째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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