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작가는 무서운 사람입니다. '윤석열은 대단히 멍청해서 대통령으로 국가에 크나큰 해악을 끼치고 있다'라는 한 문장을 무려 3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 한 권으로 풀어낼 수 있다니! 저에게 원한을 품은 작가가 없다는 사실이 다행스럽습니다. 누군가 저를 겨냥해서 이런 책을 쓴다는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사회생활을 포기하고 모든 인간관계를 끊을 것이며, 창피한 마음에 바깥 외출은 엄두도 못 낼 테고, 혼자 집에 있는 동안에도 괴로움에 내내 몸서리칠 겁니다. 저를 비판하는 문구를 수없이 되풀이해 읽으며 괴로워하다가 끝내 삶을 포기해 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유시민은 그가 보라고 이 책을 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유시민은 그의 상태를 '자신이 얼마나 멍청한지도 모를 정도로 심각한 상태의 멍청이다'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바보천치에게 그의 잘못을 말하는 것은 수고로울 뿐 무의미한 행위입니다. 아무리 논리적인 근거를 들어서 말한다고 한들, 든는 사람이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말하는 사람만 입이 아플 겁니다. 차라리 주변 사람들에게 그의 비정상을 알려서 그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것이 현명합니다. 저는 유시민이 이 책을 쓰게 된 궁극적인 목표가 비정상적인 그를 모욕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주변 사람들에게 경고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 유시민은 스스로를 '래디컬 리버럴리스트'라고 일컽습니다. 다재다능해서 수많은 분야에서 다양한 역할을 해온 그를 수식하는 단어는 많습니다. <항소 이유서>를 써서 유명세를 떨친 '운동권 대학생', <거꾸로 읽는 세계사>로 화제를 모은 '베스트셀러 작가',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독일 유학까지 한 '실력파 경제학도', 개혁국민당을 창당하고 국회의원까지 지낸 '성공한 정치인',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한 '유능한 행정가', 토론 프로그램에서 보수를 상대하며 날 선 비평을 쏟아내는 '진보 스피커', 다양한 분야의 토픽을 쉽고 재밌게 풀어서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지식 소매상'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자신을 규정하는 수많은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유시민은 몇몇 인터뷰에서 본인은 '작가'라는 호칭을 좋아하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래디컬 리버럴리스트'라고 밝혔습니다. 일물일어설 때문인지 유시민은 인터뷰에서 굳이 영어 단어를 사용했지만 우리말로 옮기면 '급진적 자유주의자'입니다.
유시민이 자유주의자인 것은 분명합니다. 작가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권위주의를 혐오하며, 집단적인 통합을 강요하는 국가주의를 경계하며, 개개인의 주체적인 선택권과 행복 추구를 찬양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작가가 수고스럽게 책 한 권을 할애해서 비판한 윤석열 대통령도 자유의 신봉자입니다. 그가 직접 한 몇 차례 안 되는 연설에서 그는 내내 '자유'를 부르짖었습니다. 자유주의자가 다른 자유주의자를 비판하는 모습이라니 이상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동일하게 사용하는 '자유'라는 단어가 서로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는 자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밝힌 바가 없기에 확인은 불가능합니다.
유시민이 자유주의자의 수식어로 '래디컬'을 선택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한 것은 의문입니다. 자유의 '극단적 혹은 급진적' 확대를 의미한다면 유시민이 이 책을 쓴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앞서 제가 짐작한 '그로 인해서 주변 사람이 받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책을 썼다는 전제가 맞다면, 자신의 행복보다 전체의 공리를 위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굳이 최고 권력자와 각을 세우는 어려운 선택을 하지 않아도 유시민은 충분히 잘 먹고 잘 살 수 있습니다. 비록 출판 시장이 예전만치 못하다고는 하나,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펴냈고 아마도 펴낼 그가 구태여 수고로운 싸움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책을 쓸 시간에 커피 한잔이라도 더 내리고, 낚싯대라도 더 던지는 편이 이롭습니다. 개인적으로 작가를 만날 기회가 있다면 꼭 물어보고 싶습니다. '래디컬'의 정의는 무엇인지?
다시 책 이야기를 하자면, 읽는 내내 작가의 맛깔난 글빨에 감탄했습니다. 저속한 표현을 일절 쓰지 않고 이렇게도 무참히 짓밟을 수 있다니!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님을 실감했습니다. 육두문자를 퍼붇지도 않고, 두리뭉실한 표현도 일절 없습니다. 은유법이 아니라 직설법으로, 개념이 아니라 사실로, 기대가 아니라 포기를 명확히 밝히며 거침없이 써 내려갔습니다.
작가는 최근에 출현한 유튜브 채널에서 '본인이 공들여 쓴 책 보다 대충 쓴 책이 더 잘 팔리기도 하는데,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은 허접한 책이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책을 읽어보니 사심과 양심이 절반씩 섞여 있는 발언인 것 같습니다. 작가로서 본인이 쓴 책이 널리 팔려서 읽혀서 주변의 피해를 막고 수입도 챙기고 싶다는 바람이 먼저겠지요. 허접하다고 한 이유는 작가가 표방하는 지식 소매상 역할을 못해서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간 작가의 책에 주렁주렁 달리던 참고문헌이 이 책에는 없습니다. 수고로운 문헌 연구의 과정을 생략했는데 같은 값을 받자니 양심에 찔린다고 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내내 감탄하며 즐겁게 읽었습니다. 결코 즐거운 내용은 아니지만 저자가 그를 까는 솜씨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뒷담화보다 더 재미있는 앞담화이기에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