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카시아 프라이덱 그린 벨벳
저는 취미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간혹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독서, 러닝이라고 대답하곤 했지만 이 것들을 취미라 할 수 있는지는 항상 의문이었습니다. 취미란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서 즐기기 위해서 하는 것‘인데 전문적이 아니라는 점은 맞지만 딱히 즐거움을 느끼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재미있지만 모든 독서가 그러하지는 않았고, 가끔씩의 러닝에서 상쾌함을 느끼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러닝은 건강을 생각해서 억지로 하는 의무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순전한 즐거움을 느끼는 일은 음주이지만 취미를 술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취미를 물어볼 정도이면 별로 가깝지 않은 상대일 텐데, 공연히 알코올 중독자라고 대답해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 딱히 스스로 납득하지는 못해도 대외적으로는 독서와 달리기를 취미라고 말할 수밖에 없던 저도 취미라 할만한 도락이 생겼으니 식물 키우기입니다.
계기는 지난 연말부터 저를 괴롭힌 집안일과 직장일 때문이었습니다. 난데없이 연속적으로 터진 사고와 사건에 정신이 나가버린 상태였기에 기분을 바꿔줄 무엇이 절실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방문한 화훼시장에서 신기한 모습의 식물을 한그루 들이게 되었고 그 이후에 십 여종을 더 사며 식집사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하루에 거울 한번 들여다보지 않는 사람이 아침, 저녁으로 식물을 들여다보며 보살피게 되었고, 주말마다 새로운 식물을 들이고 싶은 욕망을 누르기가 쉽지 않을 지경입니다. 플랜테리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집사람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집은 열대정글이 되었을 겁니다. 아무튼 화훼시장에서 처음 만나서 저를 식집사의 길로 이끈 식물은 ‘알로카시아 프라이덱 그린 벨벳’입니다.
이름처럼 초록색 비단 질감의 커다란 잎이 알로카시아 프라이덱 그린벨벳의 매력 포인트입니다. 비현실적으로 커다란 잎을 처음 보자마자 일본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를 떠올렸습니다. 비 올 때 앙증맞게 쓰고 다니던 잎사귀를 닮았기 때문입니다. 커다란 머리에 비해서 너무나 작은 나뭇잎을 들고 다니던 모습이 웃겨서 기억에 남았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토토로가 들고 있던 식물은 토란이라고 합니다. 알로카시아는 토란의 사촌쯤 된다고 하니 비슷하게 생겼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덜컥 사들고 온 알로카시아는 저희 집에 온 지 삼 개월이 넘었는데 무탈하게 잘 크고 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알로카시아는 키우기 까다로운 식물입니다. 물을 좋아하는데 과습에는 취약하다니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다고나 할까요. 납득은 되지 않습니다만 저의 생각과 무관하게 알로카시아는 잘 크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 새롭게 보여준 신옆이 기특해서 너무나 행복한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