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동이 그렇대요.

"따돌림시키는 애들은 다 외동이더라."

by DAL


우리 아이가 요즘 친구 때문에 힘들어해.
그런데, 힘들게 만드는 애들이 다 외동이더라고~


건너 들은 말이다.

외동을 키우고 있는 나에게 직접 이런 말을 하는 눈치 없는 사람은 주변에 없지만

둘째를 고민하고 있는 지인에게, 외동이면 안 되는 이유를 '저런 식'으로 조언해 준 사람은 있다.

저런 식.... 부정적 어감이 듬뿍 담긴 이런 나의 생각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 뜨거운 분노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뜨거운 분노는 항상 힘없이 차갑게 다시 식는다. 애초에 '모든' 외동이 그렇다로 일반화시켜버리는 '저런 식'의 인지적 오류를 고쳐주려면, 적어도 우리 외동아이만은 '외동이지만 반드시 친구를 잘 배려하고 공감할 줄 알며 예의 바른 아이'로 성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내 앞가림도 못하고 살아가는 엄마가, 과연 내 아이를 누구나 부러워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잘 성장시킬 수 있을까..


분노는 불안이 되고, 불안은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아이가 7살이던 해의 여름날, 늦은 저녁 놀이터에서 친구와 투닥거리다가 나에게 "친구 먼저 배려해야지~" 잔소리를 들은 아이가 집에 돌아와 엉엉 울면서,

"엄마는 왜 내 편이 아니야. 맨날 친구 편만 들어주고 나만 혼내잖아!!"라고 한다. 그때는 서럽게 우는 아이가 안쓰럽기보다 걱정이 앞섰다. 아... 저렇게 자기 생각만 하는 게 외동이라서 그런가? 자기 잘못은 하나도 모르는 게 외동이라서 그런가? 같은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아이를 심하게 다그쳤다. 결국 나 또한 '외동은 그렇대잖아~'라는 편견에 사로잡혔고, 불안했고, 화를 낸 것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외동아이에 대한 편견에서 나와 우리 아이만큼은 예외가 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래서 놀이터에서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이 정말 죽기보다 싫었다. 우리 아이가 친구에게 조금이라도 예의 없는 행동을 하면, 주변 엄마들 눈치를 보느라 식은땀을 흘리고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사람 좋은 척하느라 고달팠다. 정말 쳐다도 보기 싫은 놀이터라고 속으로 울면서, 오직 아이의 배려심과 사회성을 키워준다는 명분으로 놀이터에 매일 출근하던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외동인 아이들은 놀이터가 아니면 형제자매들과의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양보와 배려의 미덕"을 깨우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휩싸인 채로..

아이들이 꿈을 키우는 놀이터에서 나는, 외동에 대한 편견을 벗어나고자 혼자만의 싸움을 하며 시들어갔다. 아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그러워지는데, 내 마음은 퍼석퍼석 해지기만 했던 그런 해였다.


시간이 흐르고 이제는 혼자서 친구들과 놀이터에 다니는 즈음이 되니

우리 아이의 사랑스러움을 발견하며 행복했어야 하는 그 시기에, 동네 엄마들의 눈치만 보며 아이를 다그치기만 했던 순간들이 미안함으로 남아있다. 이제야라도 죄책감을 조금 덜어보려고, "그때 7살 때 놀이터에서 말이야, 엄마가 너만 혼내고 눈치 줘서 미안했어"라고 사과하지만 "맞아, 그때 엄마는 맨날 ** 편만 들었었지"라고 하는 아이의 대답에 더욱 얼굴이 붉어진다.


요즘은 나부터 먼저 우리 아이를 외동으로 바라보지 않고, 편견 없이 사랑받을 수 있는 아이로 바라보려는 연습을 하고 있다. 세상 모든 아이들의 가치가 출생 순위로 매겨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외동이라서가 아니라, 또 장남 장녀라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더불어 엄마인 나도, 외동 엄마라서 불안하지 않아야 한다. 그냥 엄마라서 불안할 수는 있겠지.

이제는 "따돌림시키는 애들은 다 외동이더라"라는 '저런 식'의 편견에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외동이라 그런 게 아니고, 그 애가 그냥 그런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