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속 풍요
군대라는 곳은
개인이 절대로 존중받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매일을 대대, 중대, 소대, 분대…
‘전우’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여
단체생활을 강요받는 하나의 사회이다.
훈련소에서는 화장실도 전우조, 밥 먹을 때도 전우조, 물 마시러 가도 전우조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공동체 속에서 생활해야 하는 개인은 철저히 무시되는 공간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는 개인이라는 주체를
절대 존중하지 않는다.
누군가 혼자 있다면
그를 보고 처음 드는 생각은
‘혼자 왔네? 안 심심한가?’
‘누구 기다리나?’와 같이
혼자는 당연히 있을 수 없고
누군가 옆에 존재해야만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사고가 우선시된다.
참으로 ‘오지랖’으로 만연한 공간이다.
‘혼밥’이라는 단어가
대명사화 된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혼자 밥 먹는 것은 특별한 모습이고
그 모습을 특정화 하면서
자연스러운 개념이자 문화가 되었고
혼자 편히 밥 먹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게 되었다.
난 혼자 있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알아가곤 하지만
그만큼 홀로 고독을 씹을 시간이 분명하게 필요하다.
혼자 이런저런 사유와 성찰을 즐기고
내가 처한 상황을 객관화해보기도 하고
좋아하는 뮤지컬 노래도 흥얼거리며
혼자만의 세계관으로 들어가곤 한다.
그 시간이 되면 주변의 세상은
나의 세상으로 온전히 흡수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며
나만의 세상은
내 머릿속 떠오르는 것들로 가득 채워진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문득 정신을 차리면,
나도 모르게 조그마한 시간이 흘러있고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나 되짚어 보는 시간이 찾아온다.
난 그때 드는 감정을 굉장히 좋아한다.
내가 보는 세상에 대한 미시감과
나라는 존재에 대한 미시감이 공존하는
짜릿한 순간이다.
나와 같이 선택적 고립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당신들은 알아야 한다.
분명히 상당수 존재할 것이다.
그들에게 선택적 고립과 고독은
공동체가 되고 진정한 자신이 되기 위한
일련의 길이고 과정이자 필요조건이다.
고독과 고요 속에서도
그만의 풍요와 환희가 존재한다.
남들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지만
저마다의 영혼을 일깨워줄
시끌벅적한 무언가가 존재한다.
그 정적을 깨뜨리는 순간, 그들은 진짜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갈지도 모른다.
그 고독과 정적은
그 사람에겐 그 무엇보다 치열하고 열정적인 자아 됨이다.
저기 누군가 조각물처럼 멈추어
우리가 눈길조차 닿을 수 없는 어딘가로 떠났다.
그를 보며 떠올린다.
‘어떤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여,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그렇게 난 또 고독 속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