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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구도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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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윤규 Aug 19. 2022

너와 단어

내가 글을 쓰는 이유

너와 단어

내가 단어를 사용할 때는 그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물론 평소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모든 순간에 그러진 않지만, 분명히 전달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가장 효율적으로 상대방에게 온전한 의미와 진심을 전달할 수 있는 단어가 무엇일까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어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단어를 보고, 생김새를 관찰하고, 뜻을 찾아 그를 음미하고 상상하며 그 단어로 들어가야 한다.


그 감상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그제야 난 나를 표현하는 데에 그 단어를 꺼낼 수 있다.


그만큼 단어라는 것이 말단의 범주이지만 나에게는 그만큼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요소이다.


글을 쓰며 단어와 단어 사이에의 공백, 맥락 속 단어의 결핍, 그에 따른 의미의 결핍을 이따금 느끼면 좋아하는 누군가, 가까이하던 누군가의 부재와도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단어와 단어 사이가 너무 좁아도, 넓어도 불필요한 공백이 생기는 순간 문장은 어색해진다. 시각적인 미시감뿐 아니라, 독해의 과정에서조차 몰입을 깨뜨리는 요소가 된다.


하나의 글을 관통하는 정돈된 큰 맥락에서 하나의 단어가 빠지게 되면 누구도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발생한다.


단어의 간격에서의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그 하나의 거대한 글마저도 도미노처럼 우수수 끝까지 쓰러져버리고 만다. 단어 하나가 빠지면 그 문장을 이해할 수 없고, 그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문단을 이해할 수 없고, 그 문단을 이해할 수 없다면 글 전체 맥락의 의미가 없어진다.


단어와 단어의 공백. 단어의 부재.

사람과 사람의 공백. 사람의 부재.

너와 나의 공백. 너의 부재.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선 오로지 너의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너를 보고, 생김새를 관찰하고, 너라는 사람의 뜻을 찾아 음미하고 상상하고 너의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 감상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그제야 넌 나의 일부가 되고 나를 표현하는 데에 너라는 사람을 곁에 둘 수 있다.


하지만


너와 나 사이가 너무 좁아도, 넓어도 불필요한 공백이 생기는 순간 문장은 어색해진다.


하나의 글을 관통하는 큰 맥락에서 너 하나가 사라지면 누구도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발생한다.


너와 나의 간격의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그 하나의 거대한 글마저도 도미노처럼 우수수 끝까지 쓰러져버리고 만다. 너 하나가 빠지면 그 순간을 잃고, 그 순간을 잃으면, 내 하루를 잃고, 내 하루를 잃으면 내 앞으로의 삶을 잃어버리고 그 구도의 길의 의미가 없어진다.



하지만 너는 단어와 같다.


그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지만, 그 하나 덕분에 새로운 의미로 더 큰 나를 채울 수 있다.


수많은 단어를 감상하고 이해하고 잃어버리다 보면 나를 더욱더 강하고도 세심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찾을 수 있게 되고 그를 통해 나를 더욱 거대한 글로 만들 수 있다.


글을 쓰다, 구도의 길을 걷다, 너와 단어를 잃었을 때 우리는 다시 글을 써야 한다.


글자를 쓰고, 단어를 쓰고, 문장을 쓰고, 글을 쓰며 새로운 단어를 찾는 법을 배워나간다.


우리는 항상 새로운 단어를 배우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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