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20대의 인생
우리는 왜 태어났고 도대체 왜 살아가는가. 짧은 문장이지만 모든 철학의 근원이 되는 문장이다. 이 질문을 바탕으로 수많은 질문과 의문이 파생되고 다양한 답을 만들어내며 철학이 형성된 것이다.
모든 사고를 아우르고, 모든 답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누구도 보편적 정의를 내릴 수 없었던 질문에 일개 청년이 얼마나 대단한 고찰을 할 수 있겠냐마는 각기 다른 순간에, 서로 다른 시절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듯, 이 글에는 20년간의 경험을 가진 알량한 사내의 생각을 담는다.
이 질문에 너무 깊게 들어가면 정말 밑도 끝도 없기에 좀 더 표면적으로 글을 쓰려 한다.
“우리는 왜 살아가고 있는가?”
답부터 하자면 “태어났으니 살아가고, 행복하려고 살아간다.”
“그냥 태어났으니까 사는거지 뭐”
참 책임감 없는 말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책임감 없이 뱉어내는 것이 아닌 이것이 20년 내 삶에 대한 생각이다.
“태어났으니 산다.”
우리는 특정 목적의식을 갖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우리의 탄생에는 궁극적인 의도와 목적이 있어 이 세상에 나온 것이 아니다. 사람이란 자기 자신이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인지하기 쉽지 않으며 자신의 ‘미래’ 또한 예측조차 할 수 없다. 살아가는데 있어 의미를 찾는 것은 태어난 후 삶을 살아가며 그 안에서 발견해내는 것이다. 내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게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살아가는 이유를 찾는 것이라 말할 것이다. 100년이라는 긴 시간을 아무 의미 없이 아무 자극 없이 산다는 것은 너무나도 불행한 일이 아닌가.
하지만 이것마저도 살아가는 이유, 의미를 찾는다는 것을 굉장히 어렵고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좀 더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이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 있다. 먹는 것이 이유가 될 수 있고, 노는 것 또한 이유가 될 수 있고, 내 주위 친구들, 가족들, 내 사람들 내 주위의 모든 사소한 것들이 이유가 될 수 있다.
인간이란 존재는 한결같을 수 없기에 일생을 관통하는, 일관적인, 대단한 의미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작은 의미들을 찾아가고 자그마한 성취를 쌓아가면 언젠가 돌아보았을 때 그 모든 것들이 모여 사람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하나의 큰 의미가 되어있을 것이다. 우리는 태어났기에 살아가고 인생에 대한 의미는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고찰’하며 찾아가는 것이다.
“행복하려고 산다.”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다. 불행하려고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최근의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삶에 대해 기대보다는 걱정이 더 많아졌고 세상에 대해 긍정보다 는 부정이 더욱 짙게 남아있다.
난 인생에 대해 비관적인 사람이다.
한 인간의 삶은 대체로 불행이 만연하고 원하는대로 되는 것 하나 없는 삶 속에서 ‘행복’을 찾는 구도의 길을 걸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행복이라는 감정을 굉장히 중요하 게 여기는 이유는 아주 희소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불행이 만연한 시대를 살아가며 작은 일, 사소한 일에도 ‘행복’이라는 감정을 부여하고 그 감정을 그대로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와전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건 내가 인생에 대해 비관적이라는 것이 “하 인생 살아서 뭐하냐”하는 비관이 아니다. 인생은 대체로 불행하기에 나도 사소 한 일에도 감사하고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겠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탄생의 이유는 그 누구도 모른다. 신을 이유로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생물학적인 이유를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역사적 인물들처럼 사후에, 남들에 의해 규정될지도 모른다. 그 이유가 무엇이 됐든 적어도 살아가는데 있어 무언가 원동력이 될 수 있는 자신만의 이유를 만들어 보다 더 가치있는 인생을 살아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