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구도의 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함윤규 Aug 28. 2022

나만의 순간

기록의 의미

난 추억을 먹고산다.

과거의 경험들과, 기억 속의

은은한 향수를 맡으며 그 양분을 먹고 살아간다.


필름을 직접 인화하던 시절의 색 바랜 어린 사진들

꼬깃꼬깃 접힌 엉터리 손글씨로 새겨진 일기들

자그마한 손으로 꾹꾹 눌러 그린 그림들

커가며 모아 온 클라우드 속 디지털 사진까지


형태 모를 오브제를 멍하니 바라보듯

은은한 그리움이 묻어난 추억들을 바라보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곤 한다.


분명 정지된 순간이고

활자화된 순간이지만,

그를 바라보면 영화관에 온 듯

그 모습이 선명하게 생동한다.


영화 한 편을 보고 나면

제삼자의 입장에서 영화 속 주인공을 본 듯

직접 경험이 아닌 몰입하고 ‘공감’하게 된다.



책 [강신주의 감정수업]의 머리말을 보면 이런 문장이 있다.


사진에 사로잡힌 풍경이나 사람은
단지 나의 기쁨이나 설렘을 실어 나르는
매체에 불과한 것이니까요.


사진과 글

모든 종류의 기록은 그 장면만을 담는 것이 아니다.

기록은 찰나의 순간 모든 것을 꾹꾹 눌러 담아낸다.


그날의 시간, 공간, 상황, 사람, 날씨, 기분, 그날의 향기까지…


기록은 주변의 모든 환경과 ‘감정’을 담아낸다.


내가 추억팔이를 하는 이유가 뭘까.

그냥 단순히 재밌어서는 아니다.


기억을 되뇐다는 것은

그 순간의 나에게 공감하는 것이다.


잊었던 순간에 느꼈던 감정을 다시 느끼게 하는 것이 기록이다.


초등학생 시절 일처럼 느껴졌던 방학 일기를 보면

기억 저 너머로 사라졌던 추억이 스멀스멀 피어올라

언제 잊었냐는 듯 그날의 모습이 떠오른다.


사랑하는 사람의 편지를 읽으며

한글자 한글자 나에 대한 그 사람의 마음을 곱씹듯

그 추억 속에 존재하는 ‘과거의 나’에게 깊이 빠져든다.



홀로 추억팔이를 하다 보면

요즘 들어 많이 드는 생각은

‘참 어렸다…ㅎㅎ’


당시에는 나름 성숙하다 생각했지만

이제와 돌아보면 그저 어린아이의 일상과 푸념일 뿐이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 이 글을 읽으면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또 하나는

‘내 모든 순간은 행복했다.’


정말 죽도록 힘들었고 고뇌하고 앓았던 순간도 많지만

이제 나에겐 그 순간마저도 너무나 지독한 행복 중 하나이다.


모든 행복했던 순간들을 돌아보면 현재의 나를 객관화하게 된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얼마나 달라졌나.

그때 옳다고 믿었던 게 과연 지금도 옳을까.

지금의 내 모습이 과거와 달라졌다면 미래의 내 모습은 어떨까.


그렇다면 그 모습을 위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내 과거의 흙 속에 뿌리를 주욱 뻗어 세우고

흙 속에 담겨있는 추억의 양분을 하나둘씩 다시 몸속에 채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추억을 양분 삼아 나는 하늘에 가까워지기 위해 더 높이 높이 올라간다.


하늘에 닿기 위해서는 더욱 뿌리를 깊이 많이 남겨야 한다.


나는 오늘도 뿌리를 기록한다.

기록하고, 뿌리 내리고, 흡수하기를 반복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삶에 대한 고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