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민준 Oct 07. 2021

괜찮은 척, 아프지 않은 척, 힘들지 않은 척,

생기와 웃음이 사라졌다

아내가 친구들과 금요일에 1박 2일로 부산에 놀러 갔다. 친구와 고속철도(KTX)를 타고 부산에 도착해 렌터카를 타고 여행 중이라고 했다. 나도 다음날 토요일에 친구들과 강원도 속초에 1박 2일로 놀러 갔다. 속초에서 1박을 하고 오전 열 한시 즈음 아내에게 전화하여 행복한 여행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아내는 잘 놀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니 아내와 아들이 없었다. 아내에게 전화해서 어디 있느냐고 물으니 동네 H병원 702호로 오라고 했다. 놀란 가슴에 병원으로 가면서 무슨 일인지 궁금해 오만(五萬) 생각을 하기도 했다. 병실에 도착해 아내를 보니 왼쪽 다리에 깁스붕대 한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잘 놀고 있다던 사람이 무슨 일이냐고, 어쩌다가 다쳤느냐고 물었다. 여행 중 비 내릴 때 바위에서 미끄러져 왼쪽 복사뼈가 골절됐다고 했다. 사고 현장에서 119 응급차를 타고 부산 K대학교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았다. 내가 행복한 여행을 하고 있는지 물을 때 다쳤다고 하면 걱정할 것 같아 괜찮다고 말했단다. 아내는 친구와 오후 일정을 취소하고 고속철도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해 택시를 이용해 동네병원에 입원했다.


다음날 오전에 엑스레이·CT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내내 마음을 졸였다. 의사는 엑스레이를 보이며 왼쪽 다리 이중 복사뼈 골절이라고 병명을 말했다. 6주간 깁스하고 있어야 한다며, 오후 두 시에 수술한다고 말했다. 


아내가 수술실로 들어간 그 순간 내 세상은 일시적으로 멈춰 버린 듯했다. 혹시나 수술이 잘못되지는 않을까 두려운 마음에 걱정스러웠다. 마음은 혼란스럽고 나쁜 일이 생기지 않을 거라고 믿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하지만 수술이 잘 될 거라고 믿었고 세시 간 정도의 수술을 마치고 아내가 병실로 돌아왔다. 아내가 통증을 호소하며 아파하는 모습은 차마 볼 수 없었다. 아내가 수술받고 병실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아내의 수발을 들었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아내의 빈자리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내가 없는 집에는 생기와 웃음이 사라졌다. 편하게 살던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지났고 여름 더위로 음식물이 상해 냄새가 나고 정리 정돈이 되지 않아 집은 엉망이 되었다. 아들 학교 준비물을 챙기고 숙제를 봐주고 밥을 먹였다. 입었던 옷을 세탁기에 넣고 돌려서 건조 후 잘 정리해서 서랍에 넣었다. 예전에는 아내가 웃으며 하던 집안일이 가장 쉽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직접 청소하고 정리를 해보니 의외로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다. 지금껏 불평불만 없이 생색내지 않고 웃으며 집안일을 도맡아 했던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내는 우리가 편하게 쉴 수 있도록 가정의 소소한 일을 하며 시급조차 받아본 적이 없다. 엄마와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생각보다 많은 것을 희생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특별히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집에서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고 심부름만 시킨 내가 한심스러웠다. 


아들도 엄마의 빈자리가 크게 느꼈는지 엄마 언제 집에 오느냐고 짜증을 부렸다. 하루빨리 건강한 모습으로 집에 왔으면 좋겠다며 엄마 집에 오면 말 잘 듣겠다고 한다. 병원에서 잠을 자며 피로가 쌓이고 짜증이 나도 아내에게 조심하지 않고 왜 다쳤냐고 나무랄 수 없었다. 더 많이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아내의 건강을 위해 이젠 내가 도와야 할 차례라고 생각했다.


우리 가족이 밥을 먹고 세탁한 옷을 입고 잠을 편히 잘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었다. 아내가 가사 일을 할 때 거들먹거리며 도와주지 못한 나를 반성한다. 아내는 가정부도 하녀도 아니란 걸 너무 늦게 알았다. 2주 만에 퇴원한 아내가 집에 돌아오자 집안은 다시 활기를 찾고 원상태로 돌아갔다. 


아내가 집에 있기만 하는데도 웃음이 가득 채워지다니 아내라는 존재가 신기했다. 아내가 입원해 있는 동안 나와 아들은 철이 조금 든 것 같다. 불편하고 힘든 사람은 아내다. 하지만 괜찮은 척, 아프지 않은 척, 힘들지 않은 척, 웃으며 우리 곁에서 미소 짓고 있다. 힘들어도 짜증 내지 않고 말없이 우리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애써준 아내에게 수고했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야겠다. 


아내는 소중한 선물이다.

작가의 이전글 햇살 머금은 강물 위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