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전쟁까진 아니였다.
폴란드에서 결혼식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이전 글에서 말했다시피 남자친구와 상의하여 총 3개의 식을 준비하겠다고 마음먹은 이후, 내 앞에 최우선 과제로 떨어진 것이 딱 하나 있었다.
바로 '피로연장' 이였다.
"요즘 식장 잡는게 그렇게 어렵대, 전쟁이야. 전쟁!"
"좋은 가격인 곳은 이미 23년도까지 마감이래..."
내 주변 친구들은 당장 내년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내 이야기를 듣자 마자 호들갑을 떨었다. 코로나로 요 몇해 결혼식이 모두 밀려 최근에는 결혼을 하려 해도 남는 날짜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친한 친구 한 명은 21년도에 2023년 하반기 결혼식장을 예약했다며, 내게 서두르라고 경고했다. 교회 예식은 하루에 여러 쌍이 진행할 수 있지만 결혼식장은 한 주에 딱 한 커플만 결혼할 수 있다며, 자리가 많지 않다고 했다.
폴란드는 한국처럼 따로 예식장이 있는 문화가 아니라, 보통 호텔 레스토랑 혹은 오래된 고성, 저택의 이벤트용 홀을 대여해 결혼식장으로 꾸며 쓰는 경우가 많다.
남자친구의 고향은 우리가 거주하는 폴란드의 브로츠와프(Wrocław)에서 북쪽으로 30km 정도 떨어진 트쉐브니차(Trzebnica)라는 인구 13,000명의 작은 도시이다. 내가 항상 이정도면 시골 마을 아냐? 할때마다 도시라고 우긴다. 일단 폴란드 기준 시(miasto)긴 하다. 가능하면 남자친구가 세례받은 교구에서 미사를 올리고 싶다는 (예비)시부모님의 의견 및 주변에 사시는 남자친구 쪽 가족들을 고려하여, 이동이 불편하지 않은 근처에서 예식을 올리기로 했다.
결혼식은 어디서 해야 할까?
폴란드의 결혼식 전통에 따르면 신부측 가족이 예식장과 음식을, 신랑측 가족이 술과 밴드를 준비해야 한다. 이에 따라 보통 폴란드 결혼식은 신부의 고향 근처에서 하는 게 일반적이다. 또 멀리서 오는 하객들이 밤새워 놀고 잘 수 있도록 멀리서 오는 손님들에게 잠 잘곳을 마련해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가장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장소가 동네 곳곳마다 있는 호텔들이다. 폴란드에서 8년 넘게 살면서 정말 허허벌판에 떨어져 있는 호텔이나, 외진 장소에 화려한 호텔이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 한 적이 있었다. 알고보니 그런 호텔들이 대부분 지역민 혹은 그들의 자녀들의 결혼식 피로연(Wesele) 혹은 프롬파티(Studiówka)를 위한 장소들이였다.
물론 평균적으로 폴란드 결혼식에 오는 100-150명의 하객이 전부 묵을 호텔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 가까운 가족만 피로연장이 있는 호텔에서 자고 나머지 하객들은 근처의 다른 호텔에서 자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의 경험상 피로연장에서 숙소가 가까우면 모를까, 먼 경우에는 새벽에 택시를 기다리며 벌벌 떨거나, 택시가 너무 늦게 오거나, 혹은 택시기사가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를 몇 번 겪었다. 게다가 보통 차량을 피로연장에 주차하고 숙소로 돌아가게 되니, 다음 날 돌아오는 길이 너무 멀어도 고역이다.
그러다 한 번은 결혼식에 숙소가 제공되지 않았던 결혼식을 간 적이 있엇다. 브로츠와프 근교에서 열린 식이였는데, 신랑이 사전에 남자친구에게 귀가할때를 위해 따로 전용 밴과 기사를 준비해 두었으니 필요하면 말해달라고 귀띔을 해 주었다. 이 날 놀만큼 놀았던 우리는 새벽 4시경 집에 가고 싶다며 탈출 선언을 했고, 뒷문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사의 안내를 받아 밴을 타고 안전히 집으로 귀가했다.
"우리도 그렇게 하면 숙소 비용을 아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제안했고, 남자친구도 좋다고 했다. 대부분의 하객이 차량으로 30분 내 거리에 산다면, 새벽녁에 들어와서 호텔에 3~4시간 몸을 누이는 것보다는 자기 집에 가서 푹 쉬고 잘 자다 오는게 낫지 않을까? 다음날 뒷풀이파티(poprawina)에 참석할 사람들이 차량 없이 돌아올 것도 고려하여 Uber 혹은 대중교통이 다닐 수 있는 접근성 좋은 장소였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같았다.
또 내가 참석해보니 외부에 작은 분수대와 잔디밭이 있는 정원이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여름에 이루어지는 파티이고 많은 사람들이 실내에서 춤을 추다 보면 클럽처럼 안이 후끈후끈 더워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 삼삼오오 잠시 밖에 나와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참 중요하다 느꼈다. 또 피로연장과 별도로 숨겨진 발코니나 담소를 나눌만한 작은 식당 공간이 따로 있어서 남들의 눈을 피해 쉬기도 참 좋았다.
역시나 모든 답은 (예비)시어머니가 알고 계셨다.
"아, 그 때 그 호텔 말이지? 그때 그 호텔에서 결혼한 너희 사촌의 부인이 그 호텔 주인의 딸이지 뭐니... 어디보자 어디 전화번호가 있는데... "
이렇게 호텔 주인장 전화 번호도 받았지만, 나는 더 알아보자는 마음에 당장을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한 서치를 시작했다. 호텔, 호텔, 호텔... 많은 곳을 찾아보았지만 내 마음에 차는 곳은 딱히 없었다.
친구와 같은 곳에서 결혼하게 되면 어쩌지?
얼마 뒤 참석하게 된 다른 친구의 결혼식에서 남자친구의 고향 친구 커플을 만났다. 그들은 이미 수년째 약혼 관계였고, 역시나 내년에 결혼을 예정하고 있다고 했다. 같은 고향 친구니 근처 식장 정보를 잘 알고 있겠지 싶어 이것저것 캐물어 보았다. 대부분 내가 아는 식장들이고, 친구 커플도 우리가 좋다고 생각했던 식장이 가장 괜찮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이때쯤 나는 이미 저 식장보다 나은 식장은 근처 50km 범위 내에 없다 라는 결론을 내린 상태였기에, 다소 조마조마하며 남자친구에게 물었다.
"마태우슈네 커플이 저 호텔에서 결혼하면 어떡해?"
"그게 무슨 상관인데? 어차피 우리도 하객으로 참석했던 적 있는 곳이잖아."
"아니, 친구간에 날짜가 겹치거나 날짜가 너무 가까우면 겹치는 하객들은 어떡해? 이번 주는 마태우슈네 결혼식이였습니다, 다음주 시몬네 결혼식도 꼭 참석해주세요~ 하는거야? 매주 같은 장소로 결혼식 가야해?"
"그럴 수도 있지."
남자친구는 별로 개의치 하는 눈치가 아니였다. 물론 피로연장은 피로연장일 뿐이고, 커플의 선택에 따라 장식도 음악도 분위기도 다른 폴란드 결혼식의 특징을 볼 때 이건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장소에서 바로 한 주 차이로 열리는 결혼식에 참석하게 된다면? 내가 지난 주에는 하객이였는데 이번 주에는 신부라면? 남의 결혼식과 내 결혼식을 비교하게 될 것만 같아 조금 신경이 쓰였다.
"우리가 얼른 날짜를 정해서 쟤네에게 알려주자. 최소한 2주는 텀을 두는게 좋겠어."
이렇게 나는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호텔에 방문 약속을 잡았다. 어차피 이틀 간 재밌게 놀며 구석구석 살폈던 곳이라 볼 것은 없고, 바로 사인을 했다. 7월 23일, 그렇게 날이 잡혔다.
친구 커플도 같은 장소에서 올해 결혼을 한다. 단 날짜는 두 달 차이가 난다. :-)
그래서 얼마인가요?
결혼을 준비하기 전에 가장 궁금했던 질문이였다. 그래서 비용이 얼마나 들까? 한국인인 나로서는 짐작이 가지 않았지만, 젊은 폴란드 커플에게 다소 부담되는 금액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예산을 얼마나 잡아야 할까요? 라는 나의 질문에 (예비)시어머니는 약 8만에서 10만 즈워티(한화 2,500만원에서 3,000만원)이라고 말씀하셨다. 순수 예식과 피로연에만 드는 비용이며 최근 가파르게 상승하는 폴란드 물가 (21년 인플레이션이 8%가 넘었음) 를 보았을 때 앞으로 더 상승할 수 있다.
물론 이 금액은 집집마다 다르고, 피로연 규모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혹시 독자중에 폴란드 분과 폴란드 식으로 결혼할 일이 생길 것을 대비하여, 혹은 폴란드인과 결혼에 대한 블로그는 이미 많지만 이렇게 세세하게 적은 블로그는 잘 없을 것 같아 흥미로워 하실 분이 계실 것 같아서 다소 자세한 금액을 적어 보려 한다.
내가 계약한 호텔(딱히 호화롭지 않은, 평범한 규모의 브로츠와프 근교 별 3개짜리 호텔 및 레스토랑)의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피로연장 대여비는 인당 식대로 친다. 1인당 약 300즐로티이며, 이 가격에는 기본적인 상차림과 신혼부부가 하객들과 올리는 샴페인 축배 비용 및 간단한 다과가 포함되어 있다.
결혼식에 필요한 최소 인원은 100명이다. 즉 최저 비용은 3만 즈워티, 900만원부터 시작이다.
단 이것은 기본금이고, 이 금액만 냈을시 정말 텅 빈 홀에서 100명의 사람들이 쓸쓸하게 밥만 먹고 있을 것이다. 나머지는 전부 추가 옵션인데, 다음과 같다.
결혼식 케이크 (100명기준) 45만원, 소세지 및 각종 육류를 즐길수 있는 뷔페식 바 150만원, 초콜릿 분수 100만원 등등, 뒷풀이파티 인당 3만원 등등...
이외 또 한가지 중요한 하객들을 위한 숙소는 1박에 250~300즐로티 (7만~9만원 사이) 였다. 100명의 하객이 2인실에 나뉘어 묵는다면 450만원이다. 우리는 이 비용을 절약하여 가까이 사는 하객들을 위해 밴과 기사를 대절하고, 최소한의 하객 (약 30%)만 호텔에 숙소를 마련해 주려 한다.
식장 내부 장식은 따로 플로리스트를 고용해야 하는데 아직 이 플로리스트를 결정하지 못했지만 이것에도 약 250~300만원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앗, 하객이 흥겹게 놀려면 밴드도 있어야 하는데? 급하게 식장에서 추천 밴드 몇 곳의 연락처를 받아 적어 연락을 했다. 보통 밴드의 보컬이 기나긴 결혼식의 사회자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사람이다.
이 중 영어로 진행 가능 및 국제커플 결혼 진행 경험이 있는 분을 만나 후다닥 계약했다. 금액은 6천 즐로티(약 180만원).
결혼식에 사용되는 술값 및 기타 다른 놀거리(칵테일 바, 사진부스,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 혹은 도우미 등) 역시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따로 신랑신부가 알아서 구입을 해야한다.
이래저래 잡다한 금액들을 모아보니 우리가 생각하는 하객 규모 (약 100~120명)에 맞는 예산은 대략 6만 즐로티 (약 1,800만원)인데, 신부의 드레스와 신랑의 양복은 포함되지 않은 금액이다. 2021년 폴란드인의 평균 월급이 세후 약 5천즈워티 가량인데, 한 사람의 일년 연봉이 뚝딱이다. 이러니 결혼부터 하고 돈을 모아 피로연을 하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겠지.
예산을 짜서 남자친구에게 공유하고 나니, 남자친구 입에서 한숨이 터졌다.
너무 비싼가? 다행히도 돈이 없어서 나는 한숨은 아니였다.
"아, 여태 축의금을 너무 적게 줬어!"
우리가 여태 갔던 결혼식들에는 둘이서 평균 500즐로티, 15만원 정도의 축의를 하고 왔었다. 나는 한국 기준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이 정도면 평균정도가 아닐까? 하고 내심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두 명이다. 두 명의 식대는 최소 600즐로티, 숙소 및 부대비용까지 생각하면 너무 적게 줬다는 것이다.
한국은 축의금 금액 때문에 의가 상해 연을 끊는 경우도 있는데, 결혼하고도 남자친구를 버리지 않은 친구들은 돈에 연연하지 않는 진정한 친구임에 틀림이 없다.
가장 중요한 식장과 밴드를 정했고, 날짜를 잡았으니 다음 차례는 뭘까?
"너희 결혼식엔 뭘 마실거니?"
마시다니... 뭐요? 춤 많이 출 테니 물은 있어야겠고, 그거 말고 또 뭐?
"보드카를 골라야겠구나."
여태 아무 말도 안 하고 계시던 (예비)시아버님이 다음 과제를 던져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