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의 발견
무척이나 어려운 질문이다. 나는 나를 언제 발견할까.
처음 이 질문에 곧바로 반응할 수 없었다.
몇 번이고 곱씹은 후에야 나는 글을 쓰게 되었다.
불안과 갈망은 사람은 행동하게 만든다.
하지만 나는 세상을 사는 사람들과는 달리 꽤 감정의 요동이 적은 편에 속했고, 불안과 갈망을 타인에 비해 잘 느끼는 편은 아니었다.
물론 욕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갈망'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욕구는 아니었다.
따라서 내가 어떤 감정의 요동을 느끼고 자각할 때 난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내 의견이 맞다가도 생각하다가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타인이 나를 타박할 때,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어렸을 적, 말썽도 꽤 부렸지만 그래도 부모에게 말을 듣는 편이었던 나는 부모님이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말리고 훈육이라는 명목으로 내 그림을 보는 앞에서 찢었을 때, 아주 극심한 분노와 슬픔을 느꼈던 것 같았다.
처음엔 숨이 안 쉬어질 정도로, 숨이 막히는 듯한 고통이 찾아왔고,
허무해지고 무기력해지는 일상을 마주할 때, 나는 내가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상상하는 걸 즐겼구나를 알 수 있었다.
나도 내가 그렇게 분노했던 건 처음이었고, 부모라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도, 낯설게 느껴졌으니.
처음으로 내 주변과 환경을 적대하기 시작했던 때였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때 나를 발견했던 기쁨이 억눌러졌을 때, 그것에 대해 분노한 것이었다.
환경은 나를 단단하게 해주지 않았다. 되려 흔들고 멋대로 나의 세계를 부수고 멋대로 건설하려 했기에, 나는 비로소 나의 것을 잃어서야 분노할 수 있었고,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창조자이며, 예술가의 기질이 있었던 것이겠지.
감각과 지각을 통해 영감을 피어내고, 그 영감을 기반으로 상상하며, 마음껏 그 상상을 향유하고 실현할 때, 난 비로소 나일 수 있었던 것 같다.
혼란스럽고, 억제되고, 불안해하고, 조바심과 열등감이 계속 휘몰아쳤던 나의 10대가 지나서, 표현해내지 않고, 고착되고 그저 의미 없는 것들을 답습하는 그런 자가 되어있었다.
나는 그 예술을 했던 과거의 나가 무척 사랑스러우면서도 현실을 살기엔 그런 나를 학대해야 했었다.
버리지 못한, 아니 버릴 수 없는 과거의 그 아이를 난 품은 채 옛날처럼 심장을 강타하는 그 기쁨만큼은 아니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처럼, 영롱한 영감들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울 때, 나는 비로소 살아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영감에 힘을 부여하고 기대하게 될 때, 나는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