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와 까닭
- 김용기
박이 달빛에
호박이 햇빛에 익고
힘에 부쳐서 느린
그 달빛 모으던 박은 처음부터
속 좋다는 소리를 맘에 뒀을까
지붕 올라가 밤마다 마음 졸였는데
여름 햇볕이 뜨거워도
길가, 부끄럽다니
제 몸 손 타기 바라는 헤픈 기생처럼
풍상 견뎌 낸 호박에게
쇠죽 통에 들지 않을 간절함이랴
떠난 달이 돌아오고
비 든 장마를 해가 밀어낸 것은
박 때문에
제 몸 돌볼 줄 모르는 호박 때문
시인의 한담객설에는 차갑고 뜨겁고
욱여넣음 당한 해와 달이 섞여
평생 한 궤짝 그대로
그까짓이라니.
*******
한담객설 - 한가하여 쓴 객쩍은 글
(사진:네이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