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마신 술이 맛있다
- 김용기
몰래 마신 술이 맛있다
장거리 여행
얼추 태평양 하늘을 지날 때쯤
위스키 한 잔을 수면제로 주는데
목사님도 스님도
억지 잠을 핑계로 홀짝 마셨다
눈치 빠른 승무원은 얼른
한 잔 더 따랐고
아는 사람 없어서 좋다는 귀여운 표정
가까운 하늘에 계신 분을 몰랐을까
눈치껏 한잔 더
눈치 없이 한잔 더
스며든 잠도 짜릿했으리라
막걸리 주전자에 입을 댔다
처음에는 쩝쩝
두 번째는 꼴깍
세 번째는 꿀꺽꿀꺽
뚜껑을 열고 보니 움푹 준 막걸리에
어느새 취했고
걱정이 밀려왔고
먼 어린 시절 논두렁 심부름이 그랬다
아버지는 모르는 척
아들은 용서받은 이유가 궁금했었다
그때는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