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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깟 다랭이 논, 한 뼘 반

- 아버지 회상

by 김용기

그깟 다랭이 논, 한 뼘 반


- 김용기



거르지 않고 올 해도

그만 가시라고 말씀드렸지만

휘청거리는 다리로

다랭이 논 향하는 아버지를

막지 못했다

큰 쌀 나오는 것도

땅 값 오른 것도 아닌데

많던 논 다 넘기고

손바닥 한 뼘 반 남짓 남은 것

그걸 삶의 전부로 여기시고

가는데 반나절

오는데 반나절

차라리 그냥 계시고

남 시키면 될 일을

니들 그냥 큰 거 아녀,

하시는 듯 입 꾹 다무셨다

옮겨 다니는 뻐꾸기소리 듣느라

흙 한 삽 뜨고 저산 보고

또 한 삽 뜨고 이산 보는데

오월 반나절을 쓰셨다


뻐꾸기 또 울 테고

아버지 다랭이 논 뒤 따라가면

덜 죄송할까

차라리 물꼬 보러 가자고

아버지 일으켜 세워드리는 것이

효도라는 이장 말을 듣고

오토바이에 삽 걸고

아버지 등 뒤에 태우고

흐드러졌다가 시든 아카시아 길을

뒤로 밀어내면서

갔다

아버지 손에 잡힌 둥 마는 둥

허리 꼭 잡으시라는 소리

노까우셨던가 보다

운전이나 잘하라는 소리가 외려

오토바이보다 앞섰고

산바람보다 먼저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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