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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手), 읽히다

- 누구나 감추고 싶은 것 있다

by 김용기

ㅡ수(手), 읽히다


- 김용기



소 한 마리

푸줏간 고리에 걸려 있다

갈기갈기 찢어져 폐부까지 노출

분홍색 형광등 쬐고 있다


도망칠 수도 없었다

미늘에 꿰인 주둥이 버둥거려도

물고기의 거친 숨소리 이미

낚시꾼 귀에 눌어붙었다


위기를 탈출할 수 있는 길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몇 억 개의 정자(精子)중에서

경쟁을 뚫고

헤엄을 쳐서 1등 했을 때 그 얼굴이

도둑놈이 들켰을 때 멋쩍게

웃고 나가는 장면과 겹쳐지면 된다


상대방에게 노출됐다면

높은 패라도 죽는 게

노름판에서 살아남는 법인데

벗기고

벗겨서

양파의 심(尋)이 나올 때까지 벗기면

남는 것 없을 텐데

무슨 욕심이 그렇게 큰가

나 하나 까발려진 들 별 수 있을까만

마음에 바람이 닿을 때마다

약을 발라도 분노가 되고

오래 가야 났는 자격지심 같은 것이

주린 거미처럼 돌아다녔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참는 게 쉬운 일은 아닌 줄 알지만

이미 내 수 읽혔고

가쁜 내 숨소리 눌어붙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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