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러짐에 대한 기억
- 김용기
스러지는 것이
키 큰 억새뿐이랴
쓰러뜨리는 것이 바람뿐이었으랴
등 둘 누웠던 자리만큼
고만큼만 주저앉은 청보리밭
밤새 소복이 쏟아졌던 별빛은
다 어디로 가고
풀물 든 자국만 남겼을까
맞은 자국도 있고
꺾여 스러진 분노의 흔적도 그대로 있는데
잘려 나간 절망은
바람이 저지른 소행이었단 말인가
우두머리는 말없이 죽었고
허탈한 아쉬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스러진 것들은 말이 없고
쓰러트린 것들도 말이 없는
무뎌진 기억.
즐겁게 지내려고 시를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