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즉전(曲則全)*
- 김용기
굽히지 않았고
꺾이지 않은 정몽주(圃隱) 절개가
죽어 수백 년을 살고 있는데
잊힐리야
올곧음 비교할 곳 없지만
구부러진 역사가 더 많은 날
누려 왔으니 어쩌랴
곧은 나무만 섰다면
온 산 대궐로 옮겨 갔을 텐데
굽은 서까래 아래에 누운
범부의 서러움
묻지 않음은 옳았다
산은 그게 걱정이 되어
굽었어도 나무라지 않았다
화살은 굽은 활에서 나갔고
누군가 곡사포를 만들어
산을 넘어 가 이겼을 때
세상 이치는
섞여야 된다는 것이었다
내설악 만물상에도
거센 찬 바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끼 낀 바위가 있고
좁은 하늘과
흰 구름 빠진 얕은 용소와
키 작은 솔(松)이 돌 틈 앉아 있었다
관광버스가
단풍구경에 줄을 이은 것은
구불구불 느린
한계령 때문이었다
곧아야 세상 본이 되고
이름 남는다는 걸 모르는 이 없는데
굽어서 살아남는 법 배우려고
노자 도덕경 뒤적거리는 사람들
그들 향한 손가릭질
이제 멈췄으면 좋겠다.
*곡즉전(曲則全)
'굽어도 온전할 수 있다'는
노자(老子) 도덕경 22장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