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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기 Jul 18. 2024

곡즉전(曲則全)

- 멈췄으면 좋겠다

곡즉전(曲則全)*


- 김용기



굽히지 않았고

꺾이지 않은 정몽주(圃隱) 절개가

죽어 수백 년을 살고 있는데

잊힐리야

올곧음 비교할 곳 없지만

구부러진 역사가 더 많은 날

누려 왔으니 어쩌랴


곧은 나무만 섰다면

온 산 대궐로 옮겨 갔을 텐데

굽은 서까래 아래에 누운

범부의 서러움

묻지 않음은 옳았다

산은 그게 걱정이 되어

굽었어도 나무라지 않았다


화살은 굽은 활에서 나갔고

누군가 곡사포를 만들어

산을 넘어 가 이겼을 때

세상 이치는

섞여야 된다는 것이었다


내설악 만물상에도

거센 찬 바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끼 낀 바위가 있고

좁은 하늘과

흰 구름 빠진 얕은 용소와

키 작은 솔(松)이 돌 틈 앉아 있었다

관광버스가

단풍구경에 줄을 이은 것은

구불구불 느린

한계령 때문이었다


곧아야 세상 본이 되고

이름 남는다는 걸 모르는 이 없는데

굽어서 살아남는 법 배우려고

노자 도덕경 뒤적거리는 사람들

그들 향한 손가릭질

이제 멈췄으면 좋겠다.




*곡즉전(曲則全)

'굽어도 온전할 수 있다'는

노자(老子) 도덕경 22장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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