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서화(古書畵) 한 장
- 김용기
오늘처럼 소복소복
눈 내리는 날
일찍 해 진 초가집에는
등잔불 밝힌 건넛방 이불속으로
나한(癩悍)이 기어 들어왔다
동화책 중간쯤 험상궂은 얼굴
그런 무서움은 끝내
침 꿀꺽 삼킨 어린 명치끝에
똬리를 틀었다
그 밤 사단이 났다
짠지와 동치미의 이른 저녁밥
물킬 수 밖에
요강은 이미 형제들이 선수를 쳤고
잘람잘람
불 없는 뒷간은 멀었다
그걸 밤새 참았으니
나한이 쫓아오는 꿈을
벗어날 재간이 없었던 것
눈길을 걸어
이웃집에 도착한 이른 아침
둘러 쓴 키 위에 소금이 촤르르르
뿌려졌던 아픈 기억
강물처럼 멀어져 갔다
오늘처럼 눈이 내리면
흐릿해진 나한이
내 왼 가슴을 파고 든다
밤길 쇠기러기가 무서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