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너무나 빨라졌습니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누군가의 생각, 누군가의 문장, 누군가의 감정이 내 화면에 나타납니다. 스크롤 몇 번이면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감동과 통찰이 모두 주어지기도 하죠.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문장을 접하고도, 나는 자꾸만 고립되어 간다고 느낍니다.
남들이 쓴 글을 복사해 붙여넣다 보면, 내가 정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조차 흐려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남들이 보지 않아도, 하트를 누르지 않아도.
내 안에 고인 문장을 꺼내기 위해, 브런치에 첫 글을 올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 글은 나를 세상에 소개하는 명함과도 같았습니다.
스타트업에서 부딪혔던 일들, 낯선 조직에서 정체성을 잃을 뻔했던 순간들, 밤을 새우며 기획서를 붙잡고 나눈 대화들.
그 모든 경험들이 문장이 되었을 때, 비로소 저는 제가 걸어온 길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익숙한 문장들이 다른 곳에서 낯선 이름으로 다시 등장했습니다.
문장의 구조만 살짝 바뀌었을 뿐, 제가 쓴 이야기들이 다른 사람의 콘텐츠로 재가공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저작권”이라는 단어를 진지하게 떠올렸습니다.
그건 단지 법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 글은 내가 썼습니다”라는 선언, 수많은 고민과 경험 끝에 탄생한 문장 하나하나가, 존재의 증명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세상은 더 빨라졌습니다.
이번엔 AI가 등장했습니다.
이제는 직접 쓰지 않아도 됩니다.
누구든 ChatGPT에 몇 줄만 입력하면, 감성적인 인삿말도, 일기 같은 글도 만들어 줍니다.
경험하지 않아도 마치 경험한 것처럼 글을 써줍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요?”
“시간도 아끼고, 더 효율적이잖아요.”
효율은 때때로 표절과 타협합니다.
누가 썼는지 모르는 문장, 감정 없이 조립된 생각, 출처 없는 텍스트.
이제는 ‘쓴다’는 말조차 모호해졌습니다.
AI는 흉내를 넘어서 창조를 흉내 내는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나의 말투, 나의 어휘, 나의 리듬을 재현할 수는 있지만, 내가 겪은 시간까지는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AI는 살아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전히 씁니다.
스타트업 프로젝트가 실패했을 때, 팀원이 퇴사했을 때,
아이를 재우고 나서야 비로소 찾아오는 복잡한 감정을 붙잡기 위해.
그건 누구도 대신 써줄 수 없는 문장입니다.
AI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내가 겪은 일’에 ‘내가 느낀 감정’을 완전히 담아내지는 못합니다.
이제 저작권은 과거보다 더 모호한 개념이 되었습니다.
AI가 만든 이미지, 생성한 글, 작곡한 음악.
그건 과연 누구의 것일까요?
법은 아직 정확한 답을 내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 안에 ‘나의 마음’'나의 경험' 이 없다면, 그것은 나의 창작물이 아닙니다.
저작권은 단순히 보호받기 위한 권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여기에 있었다”는 흔적이며,
“이건 내가 만든 이야기입니다”라는 작고 단단한 선언입니다.
복붙의 시대, AI가 편지를 대신 써주고 이력서를 대신 써주는 이 시대에도
저는 오늘도 씁니다.
이 문장은 내가 쓴 내 경험이며,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조용히 한마디를 덧붙입니다.
“이 문장은, 정말 당신이 쓴 것인가요?”